<재외기자 칼럼>박정연의 '케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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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기자 칼럼>박정연의 '케밥 유감'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4.2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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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에게 라면 바친 사람들, 형제의 나라 ‘케밥’은 안된다고?

“형제 나라 한국, 힘내길 바랍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을 위해 지난 24일 '케밥 봉사'에 나섰다가 자원봉사자들의 제지로 남은 음식을 싣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터키인 11명 중 한명이 남긴 말이다.
 
꼭두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 진도에 도착해 케밥을 만들어 실종자 가족에 나눠주려 했던 터키인들은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고기냄새가 심하다" "여기가 무슨 축제 행사장이냐" 등 항의를 하자, 봉사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오후 1시께 서둘러 철수해야만 했다. 이들이 설치한 케밥부스 앞 현수막에는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는 말과 함께 '형제의 나라 터키'라는 글귀도 적혀있었다.
 
1,500명분을 만들어 진도군청으로 부터 사전 허가까지 받은  이들은 남은 음식을 다 나눠주지도 못하고 자원봉사자들의 항의로 자리를 떠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형제의 나라’ 국민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자리를 뜨는 순간까지 잊지 않았다.
 
장례나 재난 현장같은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고기냄새를 풍기는 것은 우리네 정서나 문화에 비춰볼 때 맞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현지 자원봉사자들의 판단이 백번 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오직 안타깝고 위로하고픈 마음에 먼 곳에서 찾아 온 외국인들이다. 그런 마음을 받을 자세가 있었다면 최소한의 융통성 정도는 충분히 발휘할 수도 있었다.
 
단지 음식냄새와 분위기 때문이라면,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체육관에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방법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이들을 돌려보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식음을 마다하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기운내라고 고기라도 대접한다는 게 어찌 큰 결례가 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이들은 겸연쩍은 마음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케밥 밖에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상황판단이 빠른 자원 봉사자들이라면 서남수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테이블위 구호약품을 치우고 라면 먹을 때는 왜 말리지 못했는지 되묻고 싶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참사가 발생하고,  우리 한인들이 도울 수 있는 게 전부라며 김치랑 밥을 가져갔는데, 냄새난다고 똑같이 거절을 당했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상상 해보자. 어쩌면 '문화차별', ‘인종차별’이니 하며 문제가 커졌을 지도 모른다.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갖춘 대부분의 나라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음식이 아니라면 그런 이유로 제지하지는 않는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사고현장에서 실종자 가족 또는 유가족들이 그런 판단을 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이런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터키 전통음식인 케밥을 우리의 밥과 김치가 아니라 축제장에서나 즐기는 먹거리 정도로 판단한 듯 싶다. 간편하게 끼니를 떼울 수 있는 김밥이나 주먹밥 정도로 여겨 기진맥진해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하지만  생업과 만사를 제쳐놓고 돕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 모두를 싸잡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자원봉사자 개개인의 ‘판단착오’ 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방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경직된 사고체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기자는 혹시라도 이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질까 솔직히 걱정된다. 한국사람들이 글로벌 스텐다드에 동 떨어진 의식수준임을 알리는 꼴이 될 것 같아서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결코 운이 나빠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알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화, 국제화 시대를 입으로는 떠들면서 정작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거나 연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자존심 탓인지, 우리 정부조차 미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구조지원을 거절했다는 소식도 전한다.
 
"우리가 당신들보다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혼자 하는 게 훨씬 속 편하고 더 능률적이다." "당신들이 와 봐도 결국 일만 번거롭게 만든다." "그저 마음만 받겠다."
 
뭐 이런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는 듯 싶다. 정부의 이런 조치에 언론조차 반대하는 기류가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만큼은 정부나 국민들의 생각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정말 희한할 따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암보다 더 무서운 ‘선진국병’에 걸려있다.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이 조금 잘 팔리니, 우리가 뭐든 최고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사실 냉정히 따져보면 이것 빼고 우리의 의식구조와 문화수준은 여전히 중진국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세계 최고 성능과 품질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술수준 만큼, 우리가 안전관리 시스템을 철저하게 만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황당하기 조차 한 이런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최고인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세계화는 국가나 문화의 영역을 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삶,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출발선상에서 시작된다. 20년 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사고를 겪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우리 어른들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제발  선진국이니, 세계화니 떠벌이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후진국형 무사안일주의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지 않는가? 하늘에 간 우리 아이들이 제발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바란다. 아울러 마음을 주고 간 ‘형제의 나라’ 터키인들에게도 이 글로나마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