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추신수가 양키스유니폼을 입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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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추신수가 양키스유니폼을 입었더라면?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3.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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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대상 광고라면서 내용은 한국인용...홍보전략 바뀌어야
▲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불고기 광고. 추신수를 모델로 기용했다.

그동안 독도·아리랑·비빔밥·막걸리 등 광고를 통해 한국 알리기에 앞장선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미국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BULGOGI?'라는 광고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가 불고기를 권하는 광고다. 서 교수가 만든 이번 광고에 대해 미국 공영 라디오인 엔피알(NPR)은 난해하다고 했고,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ADWEEK)는 "올해 가장 괴상한 광고"라며 혹평했다. 심지어 한국문화에 정통한 한국 문화 블로그 운영자인 조 맥퍼슨은 아예 23일자 <중앙선데이>에 이런 글을 올렸다.

"마케팅의 기본은 '시장'을 이해하는 거다. 불고기 광고의 경우, 텍사스에서 활약 중인 야구 선수가 뉴욕을 중심으로 발행되는 신문 광고에 등장했다. 뉴욕 양키스 팬들은 텍사스 레인저스에 관심이 없다. 시장의 수요자들을 이해하지 못한 마케팅이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런 한식 광고에 등장하는 한국인 스타에 대해 잘 모른다. 씨앤블루부터 원더걸스, 이영애씨 모두 훌륭한 스타들이지만 아직까진 한류 드라마나 K팝 팬 사이에서만 인지도가 높다"

서 교수는 이 광고 논란과 관련하여 지난 24일자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신수를 전국구 스타라고 생각해서 기용했을 뿐이지,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뜬금없이 불고기 들고 나와 '먹어보라'... 외국 언론 "괴상한 광고"

추신수가 전국구 스타였으면 과연 서 교수의 말처럼 뒷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뉴욕 양키스의 전국구 인기 스타라고 한들, 야구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추신수 선수가 나온다면 뉴욕 시민들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치 오토바이 헬멧을 벗어던진 크레용팝처럼. 더군다나 뜬금없이 불고기를 들고 나와서 '먹어보라'고 강요하는 광고라면 미국 시민들의 반응이 어떨까.

스타 마케팅의 한계는 제품보다는 스타에 더 관심이 간다는 데 있다. 아이폰이나 코카콜라 같은 대형 광고주들도 해외시장광고에서 웬만해선 스타를 쓰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스타성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삼성도 국내에서는 스포츠스타 김연아를 내세워 짭짤한 재미를 본 적은 있지만, 해외광고시장에서 만큼은 철저히 무명 모델을 기용한다.

서 교수는 지난 2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와 함께 전 세계에 이순신 장군을 알리는 '성웅 이순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영웅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인다는 취지였다. 그는 "지난해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를 기념해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외국인들을 참여시켜 난중일기와 함께 한글을 더 널리 홍보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난중일기는 한자로 쓰여진 기록물이다. 뜬금없이 한자와 한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통해 우리 문화를 홍보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는 홍보 전략이다.
 

▲ 이영애가 등장한 비빔밥 광고 ⓒ Forthenextgeneration.com

이전에 서 교수가 만든 '비빔밥'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에게는 발음하기 따라서 마치 외계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비빔밥(BIBIMBAP)'이란 음식 메뉴를 광고 카피로 등장시킨 신문광고는 일단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런 점에서 나름 성공을 거두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부가설명이 부족해 왜 이 광고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광고 모델로 나선 배우 이영애씨도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지 못한 미국 사회에서는 그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 모델이었을 뿐이다. 효과는 적고 비싼 광고비만 날린 셈이었다.

이렇듯 그동안 서 교수가 만든 한국 홍보 광고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우리 한국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찾기 힘들었다.

광고카피 역시 논란이 많았다. '영어 문장 자체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도 광고의 경우, 과거 역사에 관한 내용인 만큼 문맥상 제대로 된 표현이라면 'Do you know?'보다는 'Did you know?'가 문법상 더 올바른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 것만 좋다, 우리 것이 최고다" 더는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비판은 딴지걸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빈말 정도로 치부되어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를 보여주는 데만 관심있을 뿐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상관없이 모니터링 기능을 꺼버렸던 셈이다.

"서 교수를 포함한 브랜드 전문가들의 문제는 홍보의 대상이 외국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이런 걸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는 조 맥퍼슨의 말은 우리의 폐부를 아프게 찌른다.

이렇듯 외국 언론들의 날선 비판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론들은 서 교수의 광고에 대해 대체적으로 온정적이다. 외국 언론의 반응을 단순히 옮겨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거나, '대안을 함께 검토하자'는 마무리로 끝난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한류 관련 홍보기사를 받아 적는 데만 열을 올리며, 정작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따끔한 조언 한 번 한 적 없는 언론매체들이 이제야 뒤늦게 비난 여론에 합류하기 겸연쩍어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별 것도 아닌 것을 갖고 외국 언론들이 주제 넘게 호들갑을 떤다는 비야냥거림의 완곡한 표현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것만 좋다,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문화적 우월감과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한국 홍보는 문화후진국이라는 오명과 더불어 자칫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 우월감은 콤플렉스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강대국 앞에서 큰 소리를 내지른 적 없는 약소국가일수록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광고 논란의 핵심은 바로 우리사회가 평범한 일반인이건 엘리트 지식인이건 유전자처럼 잠재되어 있는 민족주의적인 사고의 틀을 한발치도 벗어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이번 광고 논란 덕분에 서 교수도 많이 배웠을 것이다. 한국을 널리 알리려는 그의 노력은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나 기관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일을, 한 개인이 시간과 정열을 쏟아가며 한다는 점에서 앉아서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 필자보다는 수십배 수백배 나은 애국자다.

그러나 한국을 알리는 홍보 전문가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상, 잘못에 대한 책임과 비난도 피해갈 수 없다. 서 교수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홍보 정책도 이제는 애국이라는 이름을 덧씌운 민족주의적인 좁은 시각을 내다 버리고 세계인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 맞춰 홍보 전략을 대폭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민족적 우월감을 앞세운 관념주의적인 홍보 전략보다는 상대 문화를 이해하는 기본 토대 위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적 접근과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홍보전략을 세울 때 비로소 우리의 전략은 먹힐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뼈아픈 반성과 지혜가 필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