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국가 캄보디아에서 열린 천주교 바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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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국가 캄보디아에서 열린 천주교 바자회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2.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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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돈신부 주관,수천여명의 현지인들과 한인들로 문전성시

▲캄보디아 설정법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의 다른 종교의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거의 실효성이 없는 사문화된 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도 기독교 선교사들과 기독교계열 NGO단체 수천여명이 이 나라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종교적 자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의 수도 프놈펜에서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천주교 한인공동체(담당 오인돈 주임신부)가 주관하는 바자회 행사가 열렸다(사진 바자회 전경)
전체 인구의 약 90% 가량이 불교신자인 나라 캄보디아, 매일 이른 아침마다 탁발승의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 이 나라의 불교도 지난 1970년대 ‘킬링필드의 시대’로 알려진 크메르루즈 정권의 탄압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승적부에 기록된 5만명의 승려중 폴포트 정권 붕괴후 살아남은 자가 채 500여명도 되지 않았다는 끔찍한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약 200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킬링필드 당시 박해를 받은 것은 비단 불교 뿐만은 아니었다. 1975년 4월 17일 프놈펜 함락 직후 폴포트 정권은 즉각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강제추방명령을 내렸다.

당시 프놈펜에 상주하던 외교관과 특파원 등 언론인들은 물론이고 현지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외국인들 대부분이 육로를 통해 태국국경으로 쫒겨났다. 하지만  크메르루즈의 눈을 피해 끝까지 버틴 사람들중에는 천주교 신부 등 종교지도자들도 상당수 있었고 결국 대부분 발각되어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 킬링필드 시대의 잔혹상을 보여주는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내 수감시설의 모습. 이곳에서도 천주교 신부 등 벽안의 선교사들이 스파이 협의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프놈펜)
지금도 프놈펜 시내 뚜얼슬렝 대학살박물관(Toul Sleng Genocide Museum)에 가보면 당시 이곳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스파이로 몰려 목숨을 잃은 벽안의 신부와 선교사들의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캄보디아의 천주교 역사는 대략 130~40여년 쯤 된다. 16세기 무렵부터 포르투갈 신부들이 앙코르와트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천주교가 캄보디아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식민정권이 들어선 지난 1863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엽부터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각지의 신부들이 포교를 목적으로 베트남을 경유하여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900년대 초부터 프랑스 총독부의 영향력 아래 캄보디아 전역에 크고 작은 천주교 성당들이 지어졌다.
▲1906년 세워진 프놈펜 대성당은 크메르루즈 함락 첫해인 1975년 붕괴되어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초기 성당을 찾는 천주교 신자들은 주로 유럽출신 외교관이나 사업가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어 5~60년대에는 세례를 받는 캄보디아인들이 전국에 수 만여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성당은 1906년경에 지어진 프놈펜 대성당이었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건물이지만  일설에 의하면 명당성당에 버금가는 상당한 규모의 성당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성당 역시 프놈펜을 함락한 공산게릴라군대인 크메르루즈군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할 수는 없었다. 종교자체를 ‘인류의 적’으로 간주하는 유물론적 사관을 가진 그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남겨둘 수 없는 악의 근원(?)이었던 셈이었다.
 
지금의 프놈펜호텔 인근에 있었던 이 성당은 결국  폴포트 정권에 의해 1975년 수도 프놈펜이 함락된 첫 해 완전히 붕괴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성당을 무너뜨릴 당시 크메르루즈군 수백 여명이 동시에 대거 투입되어 직접 망치를 들고 부셨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봐서 종교에 대한 그들의 증오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 캄보디아의 국교는 불교다, 이는 헌법으로도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믿는 종교로서 정부부처에도 이를 관장하는 종교부가 따로 있을 정도다.
 
주요국가행사에는 항상 불교계 최고지도자들이 초청되어 상석을 차지, 예우와 존경을 받는다. 그만큼 불교의 교세와 영향력도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크다.
▲ 프놈펜성당 꼭대기를 장식했던 두 개의 대형종 가운데 한 개는 폴폿 정권이 붕괴되고도 한참 뒤에 프놈펜 호텔 뒤 벙꺽호수 뻘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프놈펜 국립박물관 입구에 장식되어 과거 잠시나마 융성했던 천주교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다행스럽게도 타 종교에 대해서 차별하거나 법적으로 제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심지어는 소수민족인 참족이 믿은 이슬람교를 배려하여 종교부 차관으로 임명한 케이스가 있을 정도다.

물론 캄보디아 설정법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의 다른 종교의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거의 실효성이 없는 사문화된 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도 기독교 선교사들과 기독교계열 NGO단체 수천여명이 이 나라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종교적 자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의 수도 프놈펜에서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천주교 한인공동체(담당 오인돈 주임신부)가 주관하는 바자회 행사가 열렸다.

한인커뮤니티가 주최한 역대 바자회중 가장 많은 현지인들이 찾은 행사로 기록될 듯 싶다. 이날은 종교와 상관없이 이른 아침부터 저렴하고 품질좋은 옷가지와 생활물품을 사기 위해 몰린 수천여명의 이르는 현지인들과 한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비빔밥, 김밥, 족발, 치킨 등 다양한 한국음식들이 준비되어 먹거리 풍성한 시골장터 분위기마저 물씬 풍겼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 관계자는 수익금 전액을 천주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과 현지인 불우이웃 등을 위해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날 바자회는 훈센총리의 30년 가까운 장기독재 집권체제하에 정치와 결사의 자유마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정치의 그늘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자유만큼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느낌을 주는 그런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