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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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필요한 이유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01.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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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 교수(경희대 국제교육원부원장)

 우리의 이름과 성을 보면 숫자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재미있다. 나는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 성을 가르칠 때 수와 연관시켜 기억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반대로 수를 외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공’이나 ‘방’(빵)은 0과 관련이 있고, ‘한’은 1과 ‘이’는 2와 ‘사’는 4와 ‘오’는 5와 ‘육’은 6과 ‘구’는 9와 관련이 있다. 이 때 나는 농담으로 높은 숫자인 성이 좋은 성이라고 말하면 외국 학생들은 정말인가 하는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백’은 100과 관련이 있고, ‘천’은 1000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1000에 해당하는 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마지막에 슬쩍 우리나라 성에 억의 만 배에 해당하는 ‘조’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때서야 내 성이 ‘조’ 씨임을 알고 웃음을 터뜨린다.

 숫자는 왜 필요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숫자가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숫자가 발달한 언어는 많지 않다. 고유어로 숫자가 얼마까지 있는지 살펴보면 그 언어의 수 개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도 수는 현재 아흔아홉까지밖에 없다. 100 이상은 모두 한자어이다. 물론 예전에는 100에 해당하는 ‘온’과 1000에 해당하는 ‘즈믄’이 있었다. ‘온갖’이라는 말은 백 가지라는 뜻이었다. ‘백’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한자어에도 백화(百花)가 만발(滿發)한다고 하는데, 백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제 우리말 ‘온’은 ‘모든’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세상을 의미하는 ‘온누리’가 대표적인 단어이다. ‘즈믄’이라는 단어는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죽은 말이 되어버렸다. 단어도 생로병사가 있어서 태어났다가 죽기도 하는 것이지만, 왠지 숫자 천을 나타내던 순 우리말 ‘즈믄’이 사라진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여 부활(?)을 시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떤 언어에는 숫자가 몇 개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농담처럼 ‘하나, 둘, 셋’ 다음이 ‘많다’라고 하는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제일 큰 숫자는 ‘10’인 듯싶다. 아이들에게는 ‘열’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숫자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수를 셀 때 손가락을 꼽는다고 하는데, 손을 꼽아 셀 수 있는 가장 큰 수가 10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번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 더 많이 숫자를 셀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쯤 되면 몇을 세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에게 ‘열’은 큰 숫자이다. 나는 종종 아이들이 말하는 ‘열’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 먼 길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늘 ‘열 밤만 자면 오실거야’를 말하였다. 아이들은 늘 그 말을 믿었지만, 열 밤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또 열 밤이 남은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돈 벌러 가신 아버지는 쉬이 오지 않았다. 그저 열 밤이 지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요즘에는 간절함을 이야기할 때 ‘천만 번’이라는 수를 자주 이야기한다. 드라마 제목, 노래 가사, 시 구절에도 천만 번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우리가 셀 수 있는 가장 큰 단위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왠지 ‘억 번’이라는 말은 간절함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든다. 우리가 아는 수로 ‘조’나 ‘경’도 있지만 아주 큰 수라는 개념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간절한 수는 역설적으로 ‘한 번’이 아닐까 한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두 번 다시는’ 바라지 않겠다는 애절함이 다가온다. 여러분은 한 번만이라도 꼭 해 보고 싶은 것은 무언가? 늦기 전에.

  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크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도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별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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