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헌신 류인후국장의'아름다운 퇴장'에 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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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헌신 류인후국장의'아름다운 퇴장'에 눈물바다
  • 이나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1.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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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한국국제학교, 초중고졸업식 겸 퇴임식
 
▲ 북경한국국제학교(교장 정용호)는 1월8일 대강당에서 초등학교 제 16회, 중학교 제14회, 고등학교 제11회 졸업식을 개최했다.
 
북경한국국제학교(교장 정용호)는 지난 8일 대강당에서 ▲초등학교 제 16회 ▲중학교 제14회 ▲고등학교 제11회 등 초중고 합동졸업식을 열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교직원, 학부모, 재학생 및 관계 기관과 교민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초등학교 90명, 중학교 79명, 고등학교 98명이 각각 졸업했다. 이로써 북경한국국제학교는 98년 개교 이래 초등 999명, 중학교 747명, 고등학교 667명 등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됐다.
 
 북경한국국제학교는 학생들에게 특기 적성 교육에 중점을 둬 높은 진학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교육방침으로 그동안 북경한국국제학교가 배출한 학생들은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여러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가 발전하기까지는 개교부터 이번 졸업식까지 15년을 교직원 및 학생들과 동고동락한 '류인후' 사무국장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류인후 사무국장은 이번 퇴임식에서 권영세 주중한국대사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1997년 IMF경제위기로 인한 외국계 국제학교의 비싼 학비 등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재중 한국교민의 사회문제로 대두됐었다. 당시에 권병현 주중한국대사는 대사관의 은희신 교육관과 류국장에게 한국학교설립을 추진할 것을 지시한다. 그 즈음 류인후 당시 국제협력단 소장은 소장직에서 명예퇴직하고 이 지시를 받아 북경한국국제학교 설립을 준비한다. 설립준비를 마친 국제학교는 1998년 8월23일 중국교육부 및 한국 교육부로부터 학교설립승인을 받고  9월1일 개교를 했다. 중국에서는 최초로 한국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개교 당시에는 중국학교 건물 4층을 6개월간 임대했다. 이후에 더 나은 곳으로 이전하기위해 불철주야 애쓴끝에 2001년에는 신교사건축후원회를 결성해 5년만인 2006년에 지금 이 자리에 학교를 마련했다.
 
류인후 국장은 한국에서도 가장 어렵게 여기는 신설학교의 설립에 관한 모든 일을 이렇게 완벽히 이뤄냈다.  다섯차례에 걸친 학교 이전, 그리고 교사 신축, 별관 구입에 앞장 서는 등 북경한국국제학교가 이제 세계 30개 재외한국학교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선도적인 학교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열정을 쏟아부었다. 류인후국장은 본인의 인생 후반기의 모든 열정을 이렇게 학교 곳곳에 남긴채 2013년 12월27일 자신의 손 때가 묻어있는 이 학교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맞이하게 됐다.
 
그의 열정을 익히 아는 터라 퇴임식에는 북경시교육위원회 런쥔 처장등의 중국측 관계자,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직원 · 학부모 ·학생대표 · 천진한국국제학교 김연석 교장 등의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 주중한국대사관 백범흠 총영사 등의 기관장, 우리은행 최만규 중국법인장 · 중국삼성 강준영 부총재 등의 중국 진출 한국 기업 대표, 김희철재중국한국인회 고문을 비롯한 한인단체 대표 등 각계각층의 내외빈 인사 500여명이 자리를 함께하고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아쉬움을 달랬다.  1998년 학교설립부터 15년4개월이란 긴 세월동안의 노고에 대한 최상의 답례를 한 것이다.
 
▲ 2시간동안 열린 류 사무국장의 퇴임식에서 합창단이 송별연주를 하고 있다.

류국장의 약력소개를 시작으로 2시간 동안 열린 퇴임식은 관련 동영상 시청과 송공패 · 꽃다발 · 기념품 증정, 교장선생님 축사, 교직원 및 학부모 송별사, 퇴임사, 송별연주로 이어졌다.
 
지난 15년간 학교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류국장의 모습과 한국과 미국 등 세계 각지로 떠난 교사들이 보내온 메세지를 담은 동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축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정용호 교장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겨우 말문을 열었다. “교직원들을 신뢰하고 이해하며 친형제같이 편안하고 다정하게 이끌어주던 인자한 모습, 원칙을 지키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던 참다운 교육자였던 류국장의 모습이 선 하다.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으로 그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존경스러운 교육자셨던 류인후 국장님은 자신보다 자식보다 더 학생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나온 시간들은 영원히 그 빛을 발할 것”이라며 “사랑스런 학교의 어른이셨던 국장님을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드리고자 한다”고 경의를 표했다.
 
김주영 국어교과부장은 교직원 대표 송별사에서 "우리 학교를 거쳐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의지가 되셧던 분이 정년이 되어 떠나신다니 너무나 아쉽고 섭섭한 마음 누를 길 없지만 축하드린다. 황량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던 이 곳에서 성심을 다해 땅을 일구고, 튼튼한 기둥이 되고 커다란 울타리였다. 근사한 외양과 충실한 내용을 담은 활기찬 명문학교를 우뚝 세워 15년동안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수고가 오늘의 자랑스런 우리 학교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15년동안 한결같이 쏟아주신 정성이 영광스런 역사를 받치는 주춧돌이 되었다. 저희 교직원들은 학교를 위하는 국장님의 마음을 변함없이 이어받아 더 높은, 더 나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전심전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퇴임과 더불어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범흠 총영사는 “류국장이 교민사회에 큰 덕을 끼치고 떠나시게 되었는데, 퇴임후에도 늘 북경과 북경한국국제학교에 덕과 사랑을 계속 베풀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류국장은 퇴임사에서 개교 당시 열악했던 환경을 떠올리며, 학교 설립 당시 주중한국대사관이 앞장을 서고, 교민단체와 교민들, 종교단체에서 우리 학교를 가져야 한다는 불 같은 합의가 오늘의 명실상부한 국제학교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묵묵히 학교를 위하여 헌신하여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마음을 담은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교직원들이 ‘만남’을 부르고, 중등부 우경준 교사가 ‘내마음의 강물’을, 어린이 합창단이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부르며 눈물바다를 이룬 퇴임식이 끝났고, 류국장은 참석한 인사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다. 
 
권영세 주중한국대사는 이날 류국장에게 재직기간 동안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학교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였기에 그 공로를 치하하고 높은 뜻을 기려 공로상을 안겼다. 류국장은 2002년에는 주중한국대사관의 감사장,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있다.  
 
지구촌 176개국에 700만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활발히 진출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국력신장에 초석이 되고 있다. 이는 해외에 있는 한인들을 위한 교육을 위한 노고가 없다면 가능하지 못한 일이기에 류인후 국장의 퇴임식은 학생들과 교사들을 따뜻하고 자상하게 대하고 떠나는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재중 한인 교민사회의 어른이었던 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숙연함이 가득했다.
 
이번 졸업식을 마지막 공식 행사로 하고 42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류인후 국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류인후 북경한국국제학교 사무국장(왼쪽) 부부.
 
북경한국국제학교 설립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14년 동안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퇴직을 하시게 되었는데, 학교에 재직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58명이라는 적은 학생들이 모여 만세삼창으로 눈물의 개교식을 한 것이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이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우리가 겪었던 시련들과 고난과 역경들 덕분에 더욱 또렷이 그 때 기억이 납니다. 첫번째 시련은 맨 처음 중국 학교를 빌려 개교하던 날이었습니다. 개교식 첫날 중국학교는 중국인을 위한 교육시설이기 때문에 중국학교 건물에 외국인 학교는 임대할수 없다며 휴교 처리를 요청받았습니다. 우리만의 학교 건물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서러울 수 없었고, 또다른 건물을 찾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중국 학교 또는 공공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할수 밖에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태극기글 게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임대학교 또는 공공건물의 VIP 행사가 있을 때에는 학생들이 등교를 못하게 되어, 야외 수업을 해야 했고, 그 이상의 아픈 기억들도 많았습니다. 임대학교 전기 용량이 부족하여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이 그 무더웠던 여름 더위와 전기 날로 없는 겨울을 견딜수 밖에 없었던 시련의 시절도 있었습니다. 비록 학교 시설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우리 북경 교민들이 뜻과 힘을 모아 지금의 우리 학교를 만들었고,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우리 학생들이 우리의 태극기를 걸고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하고 큰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학교가 개교하던 그 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북경한국국제학교를 설립하시기 전에 다른 기관도 설립에 참여하신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국기기관을 두 곳 설립하고 그 곳에 몸담에 42년을 봉직하였습니다. 첫째는 외교부산하 한국국제협력단을 설립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10위권에 진입하게 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역할 분담이 가속화되고있는 1980년대말, UN원조도 있었지만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따라 국제협력을 위한 원조기관 설립이 필요한 때에 제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제는 국제협력기구로 우뚝 서개 되었으며, 원조규모가 갈수록 증가되고있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둘째는 IMF의 여파로 중국의 교민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전병헌 주중한국대사께서 학교설립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여 학교설립을 추진하도록 지시하셨고, 1998년 8월23일에 중국교육부 및 한국교육부로부터 설립승인을 받아 9월1일 개교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뜻 깊은 일을 한 것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학교를 떠나시는 소감과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십시오.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뒤에 두고 정든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역사는 흐르는 것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 학교가 더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떠나지만 더 멋진 미래의 북경한국국제학교를 기대합니다.
지금 자면 꿈을 꿀수 있지만, 쉬지않고 공부하면 여러분들이 바라는 꿈을 꿀수있습니다. 어렵게 세워진 우리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각자 꿈을 이루는 우리 학생들이 되고, 우리 졸업생 중에서 중국대사가 탄생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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