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펄럭일 자랑스런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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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펄럭일 자랑스런 ‘태극기’
  • 김진이
  • 승인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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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국을 다니러온 재미동포 김민주(45·LA)씨는 조카의 거듭된 재촉에 서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야 말았다. 조만간 LA를 비롯해 영국, 독일, 중국 등 세계 각국 상영관에 걸린다는 뉴스에 미국가서 볼 참이었는데 한국에서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조카를 따라나섰다.

마지막 장면까지 김씨는 50여년 전 그 때에 푹 빠져있다 돌아왔다. ‘꽃미남’스타 장동건과 원빈은 형제애를 잘 표현해주었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잘 다듬어진 화면은 허리우드의 높은 콧대에 기죽지 않아도 좋았다. 고작 300명이 표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장면은 숨이 탁 막힐 만큼 사실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남루하지만 활기찬 종로거리에서 울려퍼지던 ‘오빠는 풍각쟁이야’노래는 자꾸만 입에 맴돌았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악마가 됐던 형의 귀환에 김씨도 울고 어린 조카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김씨가 ‘태극기 휘날리며’에 숨이 막혔던 진짜 이유는 오히려 기대했던 것들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침이냐 북침이냐 논쟁도 하지 않았다. 중공군의 참여로 ‘통일’에 눈앞에서 놓친 상황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빨갱이’들의 악행을 국방군의 그것과 견주고 있었다. 게다가 진태의 약혼녀가 보도연맹에 이름 써주었다는 이유로 재판한번, 변명한번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총살됐다. 국방군에 의해. 내친 김에 내일은 실미도를 보러가자는 조카에게 김씨는 더 이상 자신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설명하지 못했다.

북파간첩들의 이야기를 다룬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폭발적인 인기는 국내외에서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한국전쟁과 북파간첩, 금기시된 소재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두 영화는 정작 젊은 세대들에게 더 친근감있게 다가간다. 젊은 세대들에게 두 영화는 ‘찐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 그런데 정작 기성세대들에게 두 영화는 낯설기만 하다. 자신들에게 친숙한 장면, 추억의 노래가 나옴에도.

영화의 감동에만 젖을 수 없었던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은 기성세대를 대표해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두 영화가 공산군을 비난하지 않게 국민을 세뇌시키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방부 역시 ‘태극기 휘날리며’제작 전 시나리오를 본 후 동생을 강제 징집하는 부분을 자진 입대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한국내에서도 이런 상황이니 재외동포들이 갑작스레 달라진 고국의 ‘열린 문화’앞에서 느끼는 낯설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빨강과 파랑, 적과 아가 분명했던 고국의 기억만을 안고 떠났던 재외동포들. 돌아와보니‘공공의 장소’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외쳐대고 있고 모두가 박수치며 ‘최고’를 외치고 있으니 그 놀란 가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그 한많은 사연, 진실을 아무런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들을 대견하게 봐주면 어떨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했다. 시나리오는 바꿀 수 있어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50여년 지나 한민족 한겨레가 세계 각국의 상영관에서 공통의 아픔을 함께 흐느끼며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영화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