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最善)의 반대말은 최악(最惡)이다. 최선이라는 말은 가장 선한 것, 즉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가장 나쁜 것의 반대말이다. 우리는 최선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선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그저 열심히 한다는 말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있는 힘껏 노력한다는 의미로만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
최악을 다한다는 말은 없지만 이 표현을 생각해 보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가 떠오른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가장 선한 것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쁜 일은 아예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선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사회적 이익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위한 일은 최선일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어릴 때 사회 시험이나 윤리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할 때 단순히 모여서 사는 동물이라는 정도로 정의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그 이상의 설명은 잘 없었던 듯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나보다는 사회를 위해서,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말이다. 단순히 모여 사는 것이 아름다운 가치일 수 없다. 내가 이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 기여할 때 나도 사회적 동물이 된다. 최선은 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살펴보라. 그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는 우선 목적이 선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공부를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우리는 연습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하지만 왜 공부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선한 목적이 있는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누르고 나 혼자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라면 최선은 아니다. 무엇을 연습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최선이라는 가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동안 최선이라는 말 속에 감추어진 내 모습을 돌아본다. 쉽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었다. 열심히 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최선이라는 말 앞에서 핑계가 되었을까? 나는 최선을 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을까? 최선이라는 가치 속에 담겨있는 착한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 본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