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내 코가 석 자!
상태바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내 코가 석 자!
  • 조현용 경희대 교수
  • 승인 2013.06.25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코가 석 자’라는 표현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다. 신체의 일부 중에서 코가 길어졌다는 의미인데 사람이 피노키오도 아니고 코가 길어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길어진다면 왜 꼭 코가 길어져야 했을까? 코가 길어지는 게 내 처지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짧은 표현 속에 수수께끼가 한 가득이다.

우선 피노키오 이야기부터 생각해 보자. 왜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 코가 길어졌을까? 거짓말을 할 때 생기는 벌이니까 입이 툭 튀어나오거나 당나귀처럼 귀가 길쭉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코가 길어지는 것으로 묘사한 이유로는 ‘코’가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콧등의 피부가 약해서 얼굴의 다른 부분보다 먼저 피가 모여 붉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술주정뱅이의 코를 붉게 묘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코를 만지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을 할 때 긴장을 하기 때문에 피가 코끝에 모여 코가 간지럽게 된다는 의견이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거짓말을 할 때 입을 무의식적으로 가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직접 입을 가리는 것은 티가 나므로 코를 만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말을 할 때 코를 만지는 것은 거짓말의 표시라고 볼 수도 있다. 진심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코를 만지는 사람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랑 고백이라면.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은 남의 일을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내 할 일, 내가 챙겨야 하는 일들도 많다는 의미이다. 주로 바쁘다는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에 대한 일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코’일까? 코는 자신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스스로를 가리킬 때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는 경우가 적고 주로 가슴 방향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인의 경우는 대부분 코를 가리키고 중국인들도 코를 가리키거나 그 주변을 가리키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코가 자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한자에서도 예전에는 스스로 ‘자(自)’가 코 ‘비(鼻)’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즉 ‘자(自)’의 글자 모양도 원래는 코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남에 대해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인류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부처님의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도,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모두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발견하고 선언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가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타적인 생각의 출발점이다.

우리말 속담이나 관용 표현을 보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발견해 볼 수 있다. 또한 선조들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간단한 표현처럼 보이는 ‘내 코가 석 자’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참견하기 전에 나를 돌아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못 됐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내게 닥친 이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 내 코는 석 자도 넘을 듯하다. 한없이 길어져 있는 내 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여러분의 코는 몇 자인가?

조현용(경희대학교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