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 역사탐사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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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 역사탐사 대장정
  • 임채완(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장, 편집위원장)
  • 승인 2013.06.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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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의 가슴 아픈 이주루트를 찾아서

국제한민족재단과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2013 분단넘어 대륙으로 가는 역사도전 대장정'이 오는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발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연해주,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추크를 방문하는 등 러시아 각지 9,900㎞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역사탐사 대장정이다. 

대장정의 길은 1907년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이준 열사가 달렸던 길이고, 또한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대장정의 길은 1930년대 러시아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당한 수난의 길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지역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한민족의 역사가 서려있으며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연해주는 한민족의 애환과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는 희망의 땅이었다.

고려인들의 러시아 이주는 유랑의 역사이다. 그들은 조선사회의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났던 유민이다. 고려인들은 두만강을 건너 무인지대인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해 자유로운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우쑤리 지역에 고려인이 처음으로 이주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이다. 최초의 이주 고려인은 총 13가구로 조선에서 견딜 수 없는 빈곤, 기아, 억압을 피하기 위해 이주해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연해주의 찌진허(Tizinhe) 유역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점차 한인촌락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1870년에는 8,400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1910년 일제의 조선강점, 3․1운동 이후 정치․경제적 원인으로 인해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더욱 확대되었는데, 1927년에는 25만여 명에 이르렀다.
 

연해주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고려인들은 한민족의 근면함과 뛰어난 토지경작과 농경기술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극동지역 개발과 경제발전에 힘을 이바지하였다. 연해주에서 그들만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살아오던 고려인들은 1937년부터 시작된 강제이주로 인해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된다. 1937년 9월 하순,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들의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간첩행위와 이의 위험성 대비”라는 이유로 약 15~20만 명에 이르는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켰다. 9월 하순부터 12월까지 지속된 강제이주 과정에서 많은 고려인들은 질병과 사고로 인해 사망하였다. 1938년의 극히 제한적인 인구조사자료에 의하면, 강제이주 과정 중 천명당 42명이 사망했고, 어린이는 5명당 1명이 죽어다는 것이다.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은 비록 혹독히 추운 들판에 버려졌지만, 고려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역경을 견뎌냈으며,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비옥한 옥토로 바꾸었다.  

8월에 진행되는 시베리아횡단 역사탐사 대장정은 바로 고려인들의 유랑의 역사와 강제이주 당한 고난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이다. 고려인의 이주루트는 한민족 이주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주 루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이주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었던 고려인은 소련 붕괴 이후 연해주로 재이주하고 있으며, 또한 일부 고려인은 모국인 한국으로 귀환이주 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을 비롯하여 광주광역시 월곡동에 새로 형성되고 있는 고려인마을이 바로 그 사례이다.

고려인의 이주 루트에는 한민족의 애환과 역사가 스며들어있다. 따라서 고려인의 이주 발자취를 따라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은 더 넓은 시야로 한민족의 역사를 확인하고, 고려인의 아픈 기억을 되짚어 보며, 나아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고려인의 이주를 정확히 파악하는 의미있는 역사 대장정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번 대장정을 통해 고려인의 이주와 정착사를 재조명하여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이 서로 포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을 기대해 본다.
임채완(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장, 본지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