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대들 위한 재외동포정책, 시급히 수립해야
상태바
후세대들 위한 재외동포정책, 시급히 수립해야
  • 김귀옥 편집위원
  • 승인 2013.06.11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전 이맘때는 교토에서 재일동포를 조사하면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났다. 교수, 교사, 기업가들로부터 노동자출신의 할아버지, 식당주인, 시장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교토 곳곳에는 재일동포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교토인들이 자부하는 기모노공업은 1930년대 대중화되었다. 비단의 재료인 누에고치의 상당 양은 경상도를 비롯한 한국에서 교토로 유입되었다. 게다가 일종의 3D업종인 비단 염색업을 주로 했던 것이 재일동포들이었다. 가모가와(鴨川)나 샛강의 염색장에는 염색을 했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재일동포들이었다. 또한 오사카와 교토를 잇는 신케이한철도(新京阪鉄道)의 지하철도 부분을 이은 노동자들도 재일동포들이었다. 교토의 주요 사회간접시설 곳곳에서 재일동포들은 험한 막노동을 했고, 사망자들도 꽤 많았다.
1920, 30년대 재일동포 노동자들이 교토에 운집하게 되자, 교토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야학을 하기 시작했다. 야학과 기독교가 결합하면서 현재는 ‘日本京都市朝鮮人基督敎會’(현 京都教会, 사이인(西院)에 위치)로 불리는 교회가 그들의 힘으로 설립되었다.

일제 패전 직전 교토부 전체 재일동포 인구가 7만명 가까이 늘었으나, 1950년에는 교토시 재일동포는 2만3천여명으로 줄어들었다. 해방과 동시에 외국인에서 국적 없는 ‘조선적’ 신분이 되어버린 재일동포들은 급한 대로 어린이 교육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교를 만들었다. 1948년 혹독하게 한신교육투쟁을 치룬 후, 교토에는 세 개의 초등학교, 두 개의 중·고등학교가 설립되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세 개의 초등학교 중 두 개 초등학교는 2013년 5월에 합교했다. 이는 교토 같은 대도시에도 소자사회의 문제가 심각하고, 대다수의 재일동포 어린이들이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민족학교를 총련계, 민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총련계 중고교 1개와 민단계 1개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야학이나 해방 직후 우후죽순 생겼던 민족학교에는 남북구분이 없었다.

아무튼 민단계로 분류된 교토한국중·고등학교는 2004년부터는 일본 학교교육법 ‘1조교’로 지정된 한국계 일본학교로서 교토국제중·고등학교로 개명되었다. 2011년부터는 문부과학성에 의해 고등학생들이 등록금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반면 총련계 교토조선고급학교의 경우는 여전히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있다. 2000년대 북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북한을 대신하여 조선학교를 탄압한다는 미명하에 고교등록금 무상화 정책에서 일본 전국의 10개 조선학교 고등학생 1,800명은 배제시켰다. 심지어 외국인학교에 지급하던 진흥보조금조차도 정지했다.
이 문제에 관하여 현재 적잖은 일본 지식인들은 발벗고 나서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후지나가 다케시 교수, “日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왕따’된 조선학교”. <프레시안> 2012. 4. 3), 조선학교 문제는 단순한 외국인학교문제가 아니라, 과거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책임과 일본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이다.

실제로 총련계, 민단계를 막론하고 민족학교를 보면 최근 한류열풍과 관련하여 조선적 학생들만 다니는 게 아니다. 조선적이 1/3이라면, 한국계 1/3, 일본계 1/3이라는 게 일반 교사들의 주장이다. 등록금 무상화 정책과 혜택과 무관하게 민족학교를 다니면 교육비 외에도 교통비나 기숙생활을 할 경우 생활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현재 그 학생들이 주로 재일동포 3, 4, 5세대에 해당된다. 그들이 민족학교이건 국제학교이건 일본학교를 졸업하면 일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에 이바지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조부모의 고국이자 동족의 나라인 한국(한반도)과도 연대하고 교류할 동족이자, 다양한 한민족 문화를 확산시켜나갈 세계시민의 일원이다.

오랫동안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를 냉전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기민정책을 취해왔다. 재일동포들은 북한의 과도한 ‘해외공민’ 규정도 불편하지만, 한국의 민단, 총련 딱지붙이기도 불편해 한다. 한 집안에도 조선적, 대한민국적, 일본국적을 가진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고, 친구들이나 지인들 역시 그러하다.

남북분단이 계속되자, 재일동포 후세대들은 일본이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세계로 돌리고 있다. 일본의 차별과 한반도의 냉전과 이산의 고통이 사무친 탓일까? 교토국제중고 교장은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후세대들이 일본에서도 외국계 일본시민으로 활약을 할 수 있고, 한반도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역설을 했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할 과제이지만, 통일의 과정에도 한국의 보다 성숙한 열린 해외동포정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