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 '사랑의 찐빵' 만든 ‘김순덕 찐빵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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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세월 '사랑의 찐빵' 만든 ‘김순덕 찐빵 권사’
  • 우리신문(uri-news.com)
  • 승인 2013.02.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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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이 되면 한인이라면 누구나 고향의 따뜻한 아랫목이나 아니면 따끈한 국물 생각이 날 것이다. 특히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아침 일찍 아버지가 집안의 재산목록 1호인 누렁소의 아침식사를 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여물 끓이는 모습이나 아니면 도시의 출근길 포장마차에서 빈속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코를 자극하는 뜨거운 오뎅국이나 순두부찌개를 생각할 것이다. 또 방과 후 출출한 상태에서 집을 향하는 학생들에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학교 앞 떡볶이나 따뜻한 찐빵이 생각 날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추운 겨울이면 아련한 어린 시절 먹거리 생각이 나서 잠시 향수에 젖어 보곤 하는 것이 이곳 도이칠란트 한인동포들의 생활이다. 하지만 어쩌다 하는 고향 생각이 아니라 1년 내내, 아니 지난 30여년 도이칠란트 생활 내내 한국의 겨울 먹거리에서와 같이 김을 모락모락 내는 아름다운 정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이가 바로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김순덕 찐빵 권사’다.

김순덕 권사는 고향인 익산에서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남성여고를 나왔으며, 군산에 있는 계정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6개월 간 보건소에서 일한 것이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이다. 이후 부모 형제를 위해 돈을 벌려고 이곳 도이칠란트에 와서 딱 3년만 있다 돌아간다는 것이 어느덧 3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현재의 남편 비트막 만트레드 씨(Hr. Wittmaack Manfred)를 만나 2남 1녀(Tobias, Simon, Nina)를 두었다. 이제는 자녀 모두 성장해 부모의 보살핌 없이 나름 열심히 살고 있으며, 아직 은퇴하지 않은 남편과 둘이서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김 권사는 그저 평범한 한국인 여성이다.

하지만 김순덕 권사에게는 남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결혼 후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결같이 찐빵을 만들어 함부르크 한인 동포사회에서 ‘찐빵 아줌마’로 소문이 나 있다. 아니 믿음이 좋은 ‘김순권 찐빵 권사’로 더 소문이 나 있다. 동포사회의 크고 작은 애경사에는 반드시 그 이의 찐빵이 등장한다. 이제 함부르크에 사는 한인들은 찐빵만 보면 으레 김순덕 권사를 대명사로 떠올릴 정도다.

평균 일주일에 100개를 만들어 동포사회에 나눠준다. 1년이면 약 5,000개, 10년이면 약 5만개. 30년이면 15만개 정도를 만들어 동포사회에 제공한 셈이다. 그것도 무료로! 어쩌다 돈을 받고 팔 경우에는 전액 교회에 헌금을 하거나 아니면 어려운 이웃돕기를 위해 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찐빵 하나를 만들려 해도 여간한 정성과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밀가루, 팥, 이스트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인데다 이를 반죽해서 숙성시킨 후 일일이 밀가루 반죽에 팥을 삶아서 속을 넣고 찜통에 쪄내야한다. 이러한 여러 과정을 거쳐 밀가루와 팥이 찐빵이 되어 나오기 까지는 적어도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 빵들을 김순덕 권사는 남편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매주 그렇게 만들어 내는 찐빵이 평균 약 100개라고 하니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김 권사는 하필 왜 찐빵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 일을 30여 년 동안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을까?

김 권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힘든 외국생활가운데 고향 생각이 들어도 자주 갈 수 없는 외로운 마음을 뭔가 ‘따뜻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자신에게는 특별히 남다른 재주가 없더란다. 그러다 어렸을 때 즐겨 먹고 또 만들기를 좋아하던 ‘찐빵’이 생각났으며, 따뜻한 찐빵으로 주변인들에게 따뜻한 고향의 정을 담아 주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게 찐빵 만들기를 시작하니 받는 사람들도 모두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스스로 보람을 느껴 더욱 ‘사랑의 찐빵’ 만들기에 애착을 가지고 그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30년 세월 찐빵을 만든 탓일까, 김 권사의 얼굴 모습도 사랑이 담긴 둥그런 찐빵을 닮았다. 정말 정이 넘치고 사랑이 풍성히 담긴 영락없는 고향의 어머니 모습이다. 누구나 김 권사를 보면 둥근 고향의 달처럼 포근함을 느낀다. 그 포근한 사람이 하얗고 둥근 포근한 찐빵을 만들어 동포사회에 무조건 나눠준다. 아무 조건 없이.

부인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남편 역시 그 풍성하고 둥근 사랑의 찐빵을 기꺼이 배달한다. 언제 어느 때고 따뜻한 찐빵을. 함부르크 한인 동포들은 늘 그 사랑의 찐빵을 먹는다. 하루 이틀도 아닌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함부르크 동포들은 이름도 없이, 조건도 없이 전하는 그 많은 ‘사랑의 찐빵’을 먹으며 어려운 이국 생활을 견디어 냈다.

김 권사는 생활이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곳 도이칠란트의 여느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부모 형제들을 위해 젊음을 바쳤고, 빠듯한 시간을 쪼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을 뿐 아니라 자식들을 잘 교육시켰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메우기 위해 피곤함 몸을 이끌고 오늘도 김 권사는 ‘사랑의 찐빵’을 만들어 몸소 ‘사랑 나누기’를 실천한다.

그러나 김 권사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30여년 세월동안 자신의 뜻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비트막 만프레 씨의 외조 덕분이라며 공을 남편에게 돌린다. 늘 도와주고 밀어주는 든든한 남편 없이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며 진정으로 남편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더욱 기쁜 일은 자녀들도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배워 직접 사랑을 실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김 권사는 말한다. 그러면서 “한 세상 잠깐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인데, 물질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사는 동안 서로 돕고 사랑을 실천해 가면서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삶일 터이고,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더 잘사는 인생이 아니겠느냐!"고 일갈한다.

학식이 많고 재산이 풍부하고 권력을 가져야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은 인구 65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달러다. 이 작은 나라가 각국 국민행복도 조사에서 단골로 상위 랭킹에 오른다. 또 중남미 코스타리카는 국민소득 6,500달러다. 도로는 우리 1960년대를 연상시키고 건물들은 낡았다. 그런데도 돈 싸들고 이민 가는 미국인 은퇴자가 1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보람을 찾으며 기꺼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느냐!”며,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김순덕 찐빵 권사의 힘든 이국 생활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는지……. 그 이는 진정 한민족의 얼인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한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여 도이칠란트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 모두의 사표가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도이치인들에게도 한국인의 사랑의 전달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찐빵 아줌마 파이팅!!!

[독일 함부르크=최양현 기자/우리신문 http://www.u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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