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민족학교]“신명나는 일본 속 한국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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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민족학교]“신명나는 일본 속 한국 청소년들”
  • 정희영
  • 승인 2013.01.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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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학교 전통예술부, 일본 전국고등학교종합문화제 9년 연속 오사카부 대표로

2010년 3월 25일, 마흔 넘어 처음으로 이국땅에서 생활인으로 살아보겠다고 19년 근무했던 학교를 퇴직하고 초등학교 6학년인 어린 아들만 데리고 오사카로 왔다. 전등조차 입주자가 구입해야하는 문화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4월 1일이 건국학교 첫 출근이었다. 마침 오후에는 재단 이사장의 이·취임식이 있었고 교원인 나는 자연스럽게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반적 식순이 끝나고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의 축하 공연이 있다는 안내가 끝난 순간, 처음 보는 ‘나각’이라는 악기를 불며 학생들이 입장했고,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사물을 중심으로 상모를 돌리며 한바탕 신명나는 판을 벌였다. 실은 부산에서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사물놀이 동아리 담당이었고, 전라도까지 가서 장구를 배운 적이 있던 나였지만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2012 전국고등학교종합문화제 공연.
매주 토요일이면 부산문화회관의 여러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기도 했기에 비교적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였지만, 정말이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힘 있고 그렇게 맑은 미소로 관객 모두를 압도해버리는 우리 가락, 우리 장단, 우리 것을 연주하는 이가 바로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태어난 중학생 고등학생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주저 없이 나는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 고문을 자처했고 이렇게 맺어진 그들과의 인연이 벌써 3년째이다.

1991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3월 2일자 일본어 교사로 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교사로서 자기연찬을 중요하게 생각해 교사가 된 후, 계속해서 공부를 해나갔고 그 결과 일본어 교육과 관련된 현장 연구를 많이 할 수 있었지만, 현장 경력이 20년 가깝도록 한 번도 일본에서 생활하거나 구체적 공부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앞으로 남은 20년간 좀 더 생생한 일본어를 전달할 수 있는 교사이고 싶어 지금의 학교인 오사카 백두학원 건국고등학교 일본어 교사로 초빙돼 오게 됐다.

▲ 한국에서의 공연 모습.
교사로서 일본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세 번째 맞이하고 있으며, 이제 정말 조금 오사카 그리고 일본을 알 것 같지만, 지난 3년은 무엇보다 일본 속에 있는 우리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오직 일본어 학습이라는 자기 연찬만을 목적으로 왔었지만,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해야하는 본국 초빙교사로서, 민족학교인 건국학교에서 가장 한국적인 전통예술부 동아리와 함께 하며,오히려 나는 우리 민족이 힘겹게 지나온 근·현대사를 되새겨 볼 수 있었으며, 지금도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희망의 빛을 담아 피어나고 있는 재일한국인 청소년들에게 더 크고 넓은 마음을 배우고 있다.

▲ 지난 10월 열린 사학예술문화제전(私学芸術文化祭展).
[건국학교 전통예술부 일본 전국고등학교종합문화제 참여 내용]
2005년 제29회 아오모리(青森) 대회 - 북놀이
2006년 제30회 교토(京都) 대회 - 풍물놀이
2007년 제31회 시마네(島根) 대회 - 봉산탈춤
2008년 제32회 군마(群馬) 대회 – 꿈의 춤(夢舞)
2009년 제33회 미에(三重) 대회 – 신명(神命) - 최우수상 수상
2010년 제34회 미야자키(宮崎) 대회 - 신명(神命)
2011년 제35회 후쿠시마(福島/岩手) 대회 - 고성오광대
2012년 제36회 도야마(富山) 대회 - 발갱이 들소리
2013년 제37회 나가사키(長崎) 대회 - 2013년 1월 20일 오사카부 대표 출장 확정

▲ 2012 전국고등학교종합문화제 공연.
현재 일본에는 200여개의 조선학교와 4개의 한국학교가 있다. 4개의 한국학교 가운데 동경한국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3학교는 일본 사립학교이면서 동시에 한국학교다. 즉, 재일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이다. 이 가운데서도 초대 이사장 ‘조규훈’과 초대 교장 ‘이경태’ 등 백두동지회의 노력으로 1946년 3월 건국공업학교, 건국고등여학교라는 이름으로 건국학교가 창립된 이래 2013년 현재 6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국학교는 재일한국인 교육 역사의 시작이다.

▲ 지난 1월 오사카 예선에서 건국학교팀이 공연을 펼쳐 보이고 있다.
1951년에 이미 일본 학교 교육법 제 1조에 의한 사립학교의 법적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당당히 일본 사회 속에서 민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개교 이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30여 년간 자주 중립적 건학 이념을 실천해 왔다. 1976년 한국 정부 인가 학교로의 변화를 준비하며, 1977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부터 한국계 학교로의 기치를 분명히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백두학원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는 지난해 3월 부산해사고등학교와 4월 삼성여자고등학교,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등에서 신명나는 공연을 펼쳤다.

오사카부 공립, 사립을 합쳐 260여 개 고등학교 가운데 9년 연속 오사카부 대표로 건국고등학교 전통예술부가 일본 <전국고등학교총합문화제> 향토예능부분에 한국전통음악과 춤을 가지고 출장하고 있다. 전국고등학교총문화제는 연극, 합창, 취주악, 기악·관현악, 일본음악 등 총 19개 부문으로 나뉘며, 건국학교가 한국계 학교가 되던 1977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일본의 각 도도부현(都道府県) 대표 고등학생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문화 축제다.

▲ 오랜 옛날부터 한국으로부터의 문화가 건너온 것들을 기념하는 축제, 오사카 '왔소' 축제에서(11월) 건국학교팀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전국고등학교총문화제 개최 기준 규정 제 10조에 기초한 <高總文祭> 참가자격이 있어야 출전 가능하며, 원칙적으로 각 도도부현(都道府県)에서 한 단체만 출연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향토예능부분은 전승예능부분과 화태고(和太鼓)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승예능부분의 공연 내용은 향토적·지역적인 특색을 가지고 지역문화 활동으로 널리 주민들에게 친숙한 지역에 뿌리내린 전승 예능이어야 한다. 분라구, 카구라, 민요, 오도리, 노우 등 일본의 대표적 전통예능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승예능, 향토예능 부분에 당당히 백두학원 건국학교는 재일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음악과 춤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제 33회 三重 대회에서는 총 47개 현(県)에서 참가한 가운데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문화청장관상을 수상해 동경 국립극장에서 우수고 재공연을 가진 바도 있다.

제 36회인 2012년 지난해 대회에서는 새롭게 발갱이 들소리를 선보였다. 한국 경상북도에 전해져오는 무형문화제 제27호 「발갱이 들소리」는 농민들에게 전해져 오는 노동가다. 무대에 올린 것은 그 가운데「치나칭칭나네」라는 노래다. 모네기를 마치고 노동의 피로를 풀며,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다. 새싹이 힘차게 흙을 뚫고 돋아나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대지의 소리, 들소리로, 성장하려는 생명력을 힘차게 우리의 사물놀이로 표현했다. 건국학교의 공연이 끝나고 울려 퍼진 박수소리는 감탄, 경의 그 이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초겨울부터 흘린 땀방울이 아직도 온몸을 적시고 있었고 너무나도 멋지게 공연장에서 큰 박수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공연의 티켓을 얻지는 못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이 있었음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의 민속예능도 참가하여, 흥미로움을 더해주었다. 한국 모네기 풍경, 혹은 벼를 기를 때 농민들이 풍작을 기원하는 마음 등 올 1년이 무사하도록 기원하는 풍경은 일본열도의 남에서 북 모두가 공감하는 기본은 같으나, 단, 의상이나 소도구, 춤사위와 민족의상이 다른 점의 흥미로움, 그러나 뿌리는 매우 공통된다는 그런 점도 대회장의 여러분들은 느끼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본 고교생의 로망이며, 앞으로의 일본을 이끌 청소년들의 문화 향연인 일본 전국고등학교총합문화제 가운데 향토예능부문에서 2013년 1월 20일 오사카부 고등학교 예술문화연맹 참가교 전원의 만장일치로 2013년 전국대회 출장이 확정된 지금, 건국학교의 9년 연속 오사카부 대표 출장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먼저 일본 내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재일한국인들이 한국을 기억하며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일본인도 자신의 향토문화에 대해 관심이 적은 편인데, 건국은 건학 이념대로 한국을 배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지난 100년의 세월 속에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숨 쉬고 있는 재일한국인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건국학교의 9년 연속 오사카부 대표 출장이 가지는 큰 의미는 바로 오사카부가 건국학교·재일한국인의 문화를 오사카 대표로서 깊이 인정하고 있음이다. 이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한국과 일본의 특별한 근·현대사에 의해 이곳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이 바로 옆에 함께 하고 있음을, 그리고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음을 오사카부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이는 계속해서 건국학교가 지켜나가야 할 민족 교육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한편, 2012년 11월 9일~11일 제20회 세계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이 충남 공주에서 김덕수 선생님의 (사)사물놀이 한울림 주최로 개최됐다. 오사카 백두학원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는 일본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그들이 지켜온 가장 한국적인 소리와 몸짓으로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고 그 결과 영광스러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 제1회 백두학원 전통예술부 정기공연 포스터.

또한 백두학원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는 오는 3월 20일 처음으로 자신들의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 이쿠노구 히가시나리 구민홀에서 백두학원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가 첫 번째 정기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재일한국인, 한국인만이 감동하는 공연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세계인들이 감동하는 수준 이상의 공연을 목표로 앞으로도 건국 전통예술부의 끝없는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땀 흘리고 또 울어야 할지, 고문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저려오지만 일본 땅 곳곳에 그곳에서 나고 자란 그러나 분명 뿌리가 한국인 청소년들의 신명나는 한국의 소리가 더 크고 더 넓게 퍼질 것을 기대하며 이들의 특별한 도전에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일본 오사카=정희영 학교법인 백두학원 건국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