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의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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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택시 운전사
  • 김귀옥 본지 편집위원ㆍ한성대 교수
  • 승인 2012.09.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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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은 중류 라인강변의 대도시이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지만, 현재 교통의 요지로 라인란트의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꼽히고 있다.

그곳에 가면 보기 힘든 풍경 하나가 있다. 30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75세의 재독동포 노인이 있다. 독일에서는 65세가 되면 대부분 퇴직을 하여 노인층 노동력은 ‘0’에 가깝다. 물론 한국에서는 노인 노동력이 적지 않다. 길거리마다 종이상자를 수집하는 할머니들, 시장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노인에 대한 복지제도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복지가 이상적인 사회인 독일에서 75세의 노인이 택시를 몰고 있는 풍경은 낯설다 못해 경이롭지 않겠는가.

쾰른의 택시 운전사는 바로 재독동포인 김용무 씨이다. 나는 그를 2009년 6·15유럽공동위원회가 개최하는 학술행사에 초청받아 강연하던 자리에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초라한 행색이지만 철학적인 용모를 갖춘 지성인이었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수학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강의하면서 독일로 유학했던 재원이었다. 한국에서 간호사였던 그의 배우자 김문자 씨도 함께 이주하여 독일에서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남편의 수학을 내조했다.

김용무 씨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공부만 하는 처지를 자책했다. 특히 1980년 5·18광주민주화항쟁이 발발하면서 한국 상황에 대해 절망감은 그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독일에 유학온 학생들이나 재독동포들과 함께 한국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였다.

흔히 해외에서 만나게 되는 재외동포들은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남한 중심의 분단적 사고를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한반도 문제가 전체적으로 보인다. 아무리 싫어도 남과 북은 한 민족으로 운명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이주한 재외동포 1세대 가운데, 이북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모른다. 일반적으로 1960년대 이래로 1980년대까지 재미동포 1세대 중 1/3이 이북 출신이고, 1/3은 호남 출신이고, 1/3은 비호남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또한 재일동포의 일제 강점기 출신지역의 97%는 경상도를 포함한 삼남지역이다. 60만 명 가운데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송되었다. 그러다 보니, 재일동포나 재미동포의 대다수가 남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재독동포 역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분단은 개인들의 가족사에도 다 얽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과 북의 운명적인 사건에 연루되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런 사건들의 하나가 가족간첩단사건이다. 또한 최근에 얘기되고 있는 통영의 딸 신숙자 씨 사건 역시 독일 유학생이었던 오길남 박사가 방북하면서 생긴 비극적인 가족사의 하나이다.

김용무 씨 사건의 진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대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용무 씨는 1994년의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소위 ‘주사파 척결’ 발언 사건의 피해자라고 한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이 사건을 말한다’ 중). 박홍 전 총장의 주사파 척결이라는 매카시 선풍이 1년여 몰아치면 가운데 안기부 공작원으로 양심고백을 한 독일유학생 한 모씨 부부에 의해 김용무 씨는 간첩으로 낙인이 찍혀 국내에 들어올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2004년과 2005년 국내외 통일운동단체들이 해외 망명객으로 분류된 10여 명을 국내로 초청할 때도 김용무 씨는 입국을 거절당했다. 그는 해외에서 분단 조국을 바라보며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전신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쾰른의 택시 운전사로 운전대를 잡은 지는 30년이 되었다. 2009년 갑작스럽게 배우자를 췌장암으로 잃고 말았다.

그의 꿈은 살아 생전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다. 만일 살아서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면, 한 줌 뼈가 되어 고향 선산에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묻히는 것이라고 한다.

곧 추석이다. 추석 보름달은 동서남북을 차별 없이 넉넉하게 비출 것이다. 보름달은 길 떠난 사람이 집을 찾아들어 가족들과 상봉하여 시름을 나눌 수 있도록 길을 밝혀 줄 것이다. 아마 올해의 그 달도 독일 쾰른의 아름다운 라인강에도 비추게 되겠지. 그 보름달이 쾰른의 택시운전사가 고향땅을 밟고, 그리워하는 고국의 가족들을 상봉할 수 있도록 길을 밝힐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