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로서의 한류를 꿈꾼다
상태바
생활문화로서의 한류를 꿈꾼다
  • 김귀옥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2.05.25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스컴을 보면 최근 한류 문화의 기세가 대단하다. 정보통신혁명에 힘입어 유튜브를 타고 흐르는 아이돌 그룹 가수들의 현란한 율동과 노래를 세계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즐기고 있다. 김치 및 한식의 세계화와 함께 한류 문화가 세계 문화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런데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에 대한 정의는 십인십색이다. 독일계통에서는 문화란 인간의 정신적 활동으로 예술, 고전음악, 연극 등과 같은 상류층 중심의 고급문화로서의 문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영미계통에서는 문화를 생활양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화를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산품,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의 서비스와 정보, 문화상품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산다.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들 조차도 자본주의의 힘에 따라 상품으로서의 한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완전히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 중 하나가 전통문화가 아닐까 싶다. 제사 문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부모를 포함한 선조)과 만나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조상에게 기원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 간의 친선과 단합을 다진다. 그러기에 제사를 준비하려면 사람들의 정성어린 손길이 필요하다. 바쁜 세상에서 제사를 생략하거나 대체하는 집안행사를 치루고 있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그럴 경향이 더 늘어날 지도 모르겠다.
문득 해외동포들은 제사를 어떻게 할까 궁금해졌다. 지난 1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어느 재일동포 집의 제사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 교토의 한 재일동포와 친하게 되면서 ‘교육해 주는 셈치고 기회가 되면 꼭 제사 풍습을 구경시켜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 집안에서는 가족회의를 거쳐 어렵사리 낯선 고국의 동포를 제사에 입장시켜 주었다.
일본의 서민 집이 그렇듯, 좁은 땅에 3층을 짓고 살고 있었다. 1층은 소규모의 식당이었다. 좁은 2층의 부엌, 거실, 안방에는 20여명의 남녀 어른들과 어린아이들로 가득했다. 부엌의 공간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10여명 모여 있고, 문을 튼 거실과 안방에는 10여명의 남성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사상에는 부모의 영정사진이 세워져 있었고, 제수음식이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거실과 부엌은 남녀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나를 초대한 집 주인은 손님인 나에게 조차 그 벽을 허물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제사 시간 직전에는 한국어판 ‘주자가례’를 꺼내어 제수음식이 제대로 차려졌는지, 다시 점검했다. 집 주인은 한 번도 한국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물론 한국의 제사를 직접 접한 적이 없었고, 주자가례만이 제사의 교과서가 된 듯 했다.
집 주인은 어머니 서거 20년을 기리는 조사(弔辭)를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읽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1970년대까지 ‘어머니’의 고생은 전체 재일동포들의 애환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집 주인은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에 가서 두 분의 뼈를 묻는게 희망이라며 울었다. 참석한 이들도 모두 울었다.
그런데 목격한 제사 양식은 주자가례에 입각하여 지내다보니 한국의 현대적인 제사 방식이라기보다는 전통 방식에 가까워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최근 외교통상부는 한류 문화를 해외동포들을 넘어서 외국인들에게도 홍보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돈 되는 것만 홍보할 게 아니라, 실제로 한국사람들의 생활 관습도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700여만명의 해외동포들에게 현지 문화뿐만 아니라, 본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보를 주어 공유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본국 문화에 무지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문화가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면서도 현지 적응하는 문화가 되게 하는 한류문화가 되어야 한다. 해외 700만명 동포들도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로서의 한류문화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