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정치세력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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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정치세력화 가능한가
  • 임현진 교수
  • 승인 2011.11.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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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임현진 서울대 교수
제3이란 표현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는 제3의 이념과 체제는 갈구의 대상이었으면서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前)수상은 ‘제3의 길’을 통해 구(舊)맑스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도 극복할 수 있는 근대화된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제3의 길’은 ‘바지입은 대처’라는 비아냥처럼 구 맑스주의의 모순을 넘기는 커녕 신자유주의로 선회함으로서 불행하게도 좌초하고 말았다.

한국정치의 최대정파 ‘무당파’

우리의 경우에도 제3의 지향은 정치영역에서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제헌의회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려 했던 ‘중간파’가 남한에서 공산주의로 불온시되었다면 북한으로부터는 회색주의로 적대시되었다.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한 김규식이나 여운형,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남북의 체제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조봉암 등의 비극적 귀결은 우리에게 제3의 지향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제3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의 시민후보가 여당후보에 압승하면서 여야정당을 넘는 새로운 정치구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기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기존 여야정당의 체면과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다. 기득 보수에 안주한 한나라당, 후보를 만들지 못한 민주당, 양당의 권위에 금이 갔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염증이 ‘안철수 바람’을 몰고 오면서, 이에 후광을 업은 박원순변호사의 승리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국정치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여기서 한국정치의 커다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의 숫자가 전체 유권자의 거의 삼분지 일을 넘나들었다. 한국정치의 최대 정파가 무당파라는 농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선거에 임해서 대부분의 무당파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의 후보를 선택했다는 혼란된 사실이었다.

이는 우리 국민이 한국의 정당정치에 대해 회의 혹은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안정을 위해 제아무리 새롭다고 하더라도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제3의 무소속 후보대신 기존 여야정당 후보를 선택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지적해 준다. 기존 정당이 일종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3의 무소속 후보는 훌륭한 경륜과 탁월한 정책을 지니고 있더라도 제도정치권에 발을 디디기가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비(非)정당후보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는 유의미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른바 무당파 중에서 64.8%가 박원순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30대, 40대들이 색깔과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무당파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투표행위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았다는 특징을 고려하면, 이제 한국정치에서 무당파가 ‘행동하는’ 세력으로 선거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해도 틀리지 않다.

이대로는 정당이 사라질 수도 있다

정당정치의 퇴화는 비단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잡동사니’(catch-all) 구호를 내걸다 보니 정당의 기본색이 바래고 결국 정강정책의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의 정책대결은 희미해지고, 이념과 노선이 서로 다른 정당들이 권력장악을 위해 동거정부나 연합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처지다.

한국 정당정치의 불모성은 정당(政黨)이라기 보다 정당(情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당조(黨祖)격인 ‘오너’가 없어진 대신 중간보스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기에 공당이라기 보다 사당의 성격이 강하다. 둘째, 전국적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다 보니 대중적 지지를 갖지 못하는 지역당에 머무르게 된다. 결국 정당이 국민의 다양하고 상충하는 이해를 대변하는 구심력을 갖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 할 아래로부터의 대의성과 위로부터의 책임성이 구현될 수 없다.

정당무용론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안에 정당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당 중심의 선거는 퇴색하고 있다.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지지자 중심의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정당조직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 우리의 경우 비(非)정당후보의 약진은 SNS가 민심을 결집해 줌으로써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제3의 정치세력이 중앙과 지방 수준에서 뭉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제3의 정치세력이 기존 정당을 아우르는 대통합을 이루어 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한 제3의 정치세력화가 갖는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