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표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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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표류하는가
  • 임현진 서울대 교수
  • 승인 2011.09.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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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대침체(Great Recession). 미국경제의 회복이 조만간 어렵다. 앞으로 10년간 투자는커녕 긴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GDP에서 재정적자는 10.5%, 국가채무는 92.8%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세계 유일의 슈퍼 파워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금이 갔다. 미국 국채가 안전재산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대이동과 신용경색이 일어날 전망이다.

지금까지 기축통화국으로 미국은 달러의 발권력을 통해 재정적자를 매워 왔지만 더 이상 국가채무를 감당할 능력을 잃었다. 미국의 부채위기는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군비 확대와 세금 감축에 기인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고민한 증세는 공화당 티파티 계열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싼 임금과 비용을 찾아 해외로 나간 제조업의 공동화로 인해 양적 완화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일자리를 늘리기가 어렵다.

미국경제의 대침체는 세계경제를 심하게 흔들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의 증시의 동요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총액보다 많은 170조원이 날아갔다. 수출입 대외의존도가 97%를 넘는 한국으로서는 환율상승과 수출 감소는 회복기에 있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올 것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국제표준이 바뀌어야 할 처지다. 모든 나라 자산의 기본으로서 미국 국채의 신용강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국채를 대체할 투자 대안이 없다. 아직 채권시장은 정중동(靜中動)이다. 미국 국채의 투매가 공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든 나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축통화(key currency)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겠지만 나라마다 보유 외환의 통화다변화를 먼저 시도할 것이다. 미국 국채로부터 이탈이 서서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누가 미국을 대신하여 글로벌 리더십을 행사할 것인가. 유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바쁘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로 번져가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채권발행과 구제금융에 미온적이다. 오히려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돼지(PIGS) 국가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북구 삼국이라 할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유로와 다른 독자적인 공동화폐의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쓰나미 후유증마저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4년도 안 되는 동안 네 명의 총리가 바뀌었듯이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다. 여전히 이익집단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민당을 대신한 민주당은 국가쇄신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

2010년 중국의 경제는 일본을 따라잡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세계 제2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빠르면 앞으로 5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GDP에서 따라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GDP가 세계 2위라 하더라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100위권에 머물고 있다.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하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개발독재에 바탕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의 독점적 지위아래 '협의형 독재'를 통한 국가 자본주의적 발전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근거로는 미국이 여전히 세계 GDP 중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일본, 독일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지만 해외에 가장 많이 투자를 한 나라가 미국이다. 국가부채 14조 3천억 달러 중 삼분지 일만이 해외부채이고 나머지는 미국인들의 것이다. 해외로 나간 원천기술을 지닌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 달러 제국의 권위는 무너졌지만, 미국의 지도적 지위는 쉽게 깨지기 어렵다.

오늘의 세계화는 선진국 중심의 강자 이데올로기다. 그럼에도 글로벌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세계가 표류할 때 중세적 암흑기로 회귀할 수 있다. UN 등 국제기관은 문제해결의 역량이 부족하다. G7은 명분이 약하고, G20은 실체가 약하다. 미국과 중국 G2는 협력보다 경쟁 관계이다. 한국의 좌표를 냉철히 살펴보고 미래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중대한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