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화 속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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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화 속의 우정
  • 최미자(재미수필가)
  • 승인 2011.08.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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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자(재미수필가)

미국 남가주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는 재미수필가 최미자씨가 미국 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레몬향기처럼>(2007) <샌디에고 암탉>(2010) 등의 수필집을 발간한 그는 재미동포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편집자주>

우체부 아줌마가 소포를 들고 왔다. 꼼꼼하게 싼 포장을 풀어 한정희라고 적힌 족자를 거실의 책장에 걸치니 내 키보다도 길다. 두 해 전에는 뜨개질로 만든 인형들을 사진으로 보며 신기했는데, 언제부터 그가 화가로 변신했을까. 세 아이를 길러 내고 자신의 시간을 추구하는 그녀를 기억에서 꺼내며 태평양을 건너온 민화를 어루만진다.

항상 해 오듯이 선물을 앞에 놓고 나는 고마움의 작은 의식을 지낸다. 정성으로 그린 화가에게, 가르쳐준 선생님과 무사히 도착하게 해준 여러 사람에게 엎드려 절을 하노라니 행복한 물결이 가슴으로 벅차오른다.

시계를 바라보며 고국의 아침 시간을 기다렸다가 소포를 잘 받았다는 전화를 했다. 지난해 남편이 수술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연초에 보낸 영양제를 받고서 그네도 고마웠단다. 그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며 그렸고 표구도 인간문화재 아저씨에게 맡겼다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은 작은 마음이 오고 가던 정 앞에 아이들처럼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03년 우리 집 근처 산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부부가 골프를 치러 왔다 길 건너편 산으로 하도 사람들이 많이 오르기에 궁금해 올라 와 산길에서 우리랑 스친 것이다. 보기 드문 동양인 부부끼리 지나치니 문득 남편은 어디서 뵌 분 같다며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분도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게 아닌가. “혹시 B 선배 아니십니까?”라고 남편이 물었다. “예, 맞아요.” 우리도 어쩌다 오르던 등산길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반백의 주름진 얼굴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고, 내성적인 남편은 아무나 사람을 사귀는 것도 아닌데. 우리 동네 대학교의 방문교수로 왔다는 선배는 남편의 추억 속에 좋은 분 같아 재빨리 나는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 곧 귀국한다는 아쉬움에 집으로 모셔와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청년 시절로 돌아갔다.

한번은 한 여사와 함께 로스앤젤러스에 있는 유명한 중국 절로 버스여행을 하게 되었다. 힘들었던 미국 이민생활이야기를 나는 털어놓으며 눈물도 훔쳤는데. 여태 그녀는 가지가지 스트레스와 병환으로 수척해 있던 나의 그런 모습과 우리 뜰에서 기르려던 연꽃화분을 기억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도 함께. 당시 뉴욕에서 나오는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던 때라 사장님이 연꽃 뿌리 하나를 길러보라며 보내 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고 정성을 붓고 있었다.

그런 추억을 생각하며 아무리 바빠도 전화로 종종 안부를 묻던 내가 그의 가슴을 흔들었다니. 아직 그의 자식들에게도 나누어주지 못했다는 귀한 그림. 유치한 원색이라며 관심을 멀리했던 나의 편견을 깨뜨리게 해 준 한국민화. 은은한 채색의 연꽃과 벌레 먹은 이파리며 기러기 가족이며 수초를 바라보면 볼수록 감동이다. 인내와 정성 하나로 살아온 우리 여인의 시대. 민화 속 다정한 오리부부처럼 남은 우리들 생애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문화로 근대에 얻은 것도 많지만, 우리의 좋은 풍습과 빛나는 문화를 많이 잃어버려가는 나라 같아 가끔 걱정했는데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 간다니 얼마나 반가운지. 자, 이제 한국에서 날아 온 민화를 미국 이웃에게 자랑 좀 해볼까.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화려한 건물에만 들뜨지 말고 행사 기간 동안 한국의 아름다운 강산과 전통문화를 세계의 선수와 손님들에게 한껏 보여주어야 하리라. 스포츠정신과 예술을 사랑하고, 성숙한 질서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대한민국으로 말이다. 렛스 고우 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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