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정도는 옥타맨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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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정도는 옥타맨이 된 것 같아요”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6.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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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am OKTAMAN! ] 실패를 두려워 않는 옥타맨 전상혁 남경지회장

전상혁 남경지회장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월드옥타가 있는 곳을 찾으면, 그곳에는 언제나 전상혁 지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월드옥타와 전상혁 지회장이 인연을 맺은 후부터였다. 차세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강연부터, 개인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하는 잡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참여해 온 전상혁 지회장. 알음알음 국제사무국의 무한한 신뢰를 얻고 있는 것도 이처럼 투철한 충성도 때문이다.

최근에는 월드옥타 웹사이트 구축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각 지역 회원들이 실질적인 비즈니스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결정에 대해서는 반드시 선배들과의 협의를 통한 결론 도출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 SKBC 경영자이자 월드옥타의 핵심멤버인 전상혁 남경지회장을 만나봤다.

전상혁 남경지회장
실패를 기회로, 전환 빠른 것이 강점

중국 최고의 부유 지역인 장쑤성의 성도 남경. 210만 달러의 자본으로 세워진 세경비즈니스컨설팅은 기업 마케팅 자문 업체로서 주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및 정착에 필요한 정보와 자문을 제공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중간 문화교류, 부동산 개발, 투자매칭, 무역대행, 외식프랜차이즈, 패션아이템 도소매, 인터넷 쇼핑몰 구축 등의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는 복합기업으로 발돋움 중이다.

1992년 학업을 위해 대만으로 건너간 전상혁 지회장은 아시아 시장의 높은 가능성에 매료돼 본격적인 ‘한상’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필리핀 무역업체에 입사해 이력을 쌓은 전 지회장은 1994년 여행전문 업체를 창업했다.

“1990년대 초반 필리핀 여행이 호황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불모지였던 ‘보라카이’를 한국에 소개한 것이 저예요. ‘보라카이’ 붐을 필두로 필리핀 여행이 대박이 났죠. 당시 한국의 10대 여행사가 모두 저와 거래를 했을 정도예요.”

처음으로 손을 댔던 여행업은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당시 국내 대개 사업가들의 무릎을 꿇렸던 IMF 사태가 전상혁 지회장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던졌다. 1997년 겨울. 전상혁 지회장의 주 거래선이었던 한국 여행업계는 IMF 사태로 인해 폭격을 맞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업체들이 줄도산에 쓰러졌다.

“외국에 있었으니 국내 사정을 상세하게 몰랐어요. 수금이 되지 않아 들어가 보니 업체 사장이 자살을 했더군요.”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에 깔려 있던 미수금은 모두 공중분해 됐다. 창업 후 불과 4,5년만에 이룬 성과를 하루아침에 날린 셈이었다.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많은 것을 잃고 나니 하루 빨리 이것을 원상복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90년대 말 정신을 추스르고 중국으로 왔어요. 그때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더군요. 중화권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 됐어요.”

전상혁 지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생각의 전환이 빠르다는 것. 실패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에는 한국인 관리자에 대한 높은 수요가 감지되고 있었다는 것이 전상혁 지회장의 설명이다.

“중국인 근로자들을 이해하면서도 한국인의 꼼꼼하고 효율적인 업무 관리 능력이 요구됐어요.”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무역업의 발을 뗀 전상혁 지회장. 그가 노린 것은 값싼 소비용품이었다.

“IMF 이후 불황에 허덕이던 한국에서 사은품 시장이 각광을 받았어요. 저가용품의 수요가 폭발했죠. 한 분기에 60억 세무신고를 할 정도로 사업이 확장됐어요.”

“옥타와 만난 것은 2007년”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상혁 지회장은 대외활동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사업 역시 제조와 유통을 확장하는 동시에 부동산, 컨설팅, 외식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그 전에는 한국 사람들보다 중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더 많았어요. 그러다 옥타를 만난 거죠. 이거다, 싶었어요.”

차봉규 상임집행위원의 소개로 월드옥타와 조우한 전상혁 지회장. 옥타의 첫인상을 물어보자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의리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브리핑으로 옥타 회원들에게 선을 보인 전상혁 지회장은 이후 수년간 옥타를 위해 활동했다.

“옥타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3년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참여해 보라고 조언해요.”

다소 데면데면하고 어색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공이 쌓인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옥타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옥타로부터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자명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과 5년만에 월드옥타의 신임을 한몸에 얻고 있는 전상혁 지회장. 2011년 현재 그가 이끌고 있는 남경 지회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2,3세대 동포들과, 본인이 직접 중국으로 이주해 사업을 시작한 1세대 동포들을 아우르는 사업들로 주목을 끌고 있다. 조선족 자녀들을 위한 탁아소 사업이 크게 각광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 6명으로 시작됐는데, 최근에는 수요가 많아졌어요. 부모들이 모두 일터에 나가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조선족 아이들에게 한국식 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업이예요.”

전상혁 지회장은 동시에 월드옥타 웹사이트 구축 사업을 이끄는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드옥타 내 신구세대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중국 내 회원과 타 지회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한 그는 올해 이 같은 역할들을 인정 받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월드옥타는 고도로 전문화된 비즈니스 단체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선배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웹사이트 구축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사이트 내부에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정도의 고도로 전문화 된 웹사이트. 해외에는 모델이 있지만 월드옥타 내부에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권병하 회장과의 독대를 해서라도 의미있는 결과를 끌어내겠다는 것이 전상혁 지회장의 포부다.

“차봉규 위원님은 절 옥타로 이끌어 주었어요. 형님 같은 분이죠. 권병하 회장님의 일에 대해서 철두철미한 모습이나, 박기출 부회장님의 지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 외에도 옥타에는 배워야 할 분들이 많이 있죠. 제가 옥타맨이라고요? 50% 정도는 그런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