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인사회 원로 이상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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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인사회 원로 이상철 목사
  • 캐나다 중앙일보
  • 승인 200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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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최다 개신교단인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회장을 역임한 한인사회 원로 이상철 목사를 만났다. 뉴마켓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목사는 “내일 모레가 여든”인데도 여전히 청년같은 풍모였다.

혈색 좋고 몸만 건강하다고 해서 청년이 아니다. 이 목사는 한인 사회에서 존경 받는 어른으로서 젊고 건강한 삶의 지침과 철학을 토론토 한인사회에 구체적으로 일러주었다.

그뿐 아니다. 그는 21세기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낯선 땅에 이민을 온 한인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를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먼저, 그에게 왜 지난 9월 선포된 ‘캐나다 동포의 길’을 만드는 데 참여했는지 물었다. 1960년대 말의 ‘국민교육헌장’을 강제적으로 외고 썼기 때문일까? 한인 1세들은 이른바 ‘헌장’이라고 하면 심드렁한 반응부터 보인다. ‘저런 걸 왜 만드나’ 하며…. 게다가 몇몇 사람들은 '왜 이상철 목사가 기초했나’ 하고 생각할 법하다.

이 목사는 “동포의 길은 2세들을 위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1세들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들에 예전부터 무감각했다. 서운하지도 노엽지도 않다.”

이 목사에 따르면 ‘동포의 길’은 새삼스럽게 창작된 것이 아니다. “교회에 가면 크든 작든 ‘미션 스테이트먼트’가 있다. 거기에 기초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는 법이다. 동포의 길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에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앞으로 살아갈 방향, 자랑스러운 코리언-캐네디언으로서 살아가자 하는 점 등을 담은 지침이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던 것을 문장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특별한 건 없다.”

이 목사가 보기에 ‘동포의 길’은 한인 1세보다는 2세들에게 각별하고 ‘유효’하다. 그것을 기초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2세 대학생들의 요구는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한인 1세들에게는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주류 사회에 깊이 박혀 살아가야 하는 2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삶의 지침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2세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영어 문장을 만들고, 또 다듬고 했다.

이 목사는 2세들의 이같은 자세가 무엇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저들이 성장해 캐네디언 사회 속에서 코리언-캐네디언으로서 당당히 서게 될 때 주류 사회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더없이 튼튼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 갈등에 체념하는 것이 우리 한인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이다. 이 목사는 그것이 민주주의 훈련 여부와 문화 차이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대체로 이민 1세대는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 1세들은 경쟁이 너무 치열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반듯하게 정도를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러나 2세들은 다르다. 그들은 이곳 캐네디언 친구들처럼 자기 부모에게서 ‘역할 모델’을 찾으려 한다.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부모들이 어떻게 그 모델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2세 대학생들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 목사는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세 자녀들은 자기 부모가 고생하는 데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단지 ‘역할 모델’을 부모들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 할 뿐이라는 얘기다.

“비록 부모 세대가 역할 모델은 해주지 못한다 해도 아이들을 극진히 위하고 아껴주면 아이들은 그 고마움을 잘 안다. 이렇게 하면 세대 간 단절,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목사는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이민 왔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희생한다’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괜한 갈등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민 생활의 각박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이 목사는 보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최근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오는 사람들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동참하흔 흐름이 하나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조류이다.

이 목사는 21세기를 ‘나눔의 세기’라고 규정한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인정하고, 나누며 사는 세기. 이민자들은 21세기의 시대적 요청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나누는 세기인 21세기에는 일방적인 힘은, 그것이 제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렇게 고전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캐나다도 참전을 거부했고, 한국도 이라크에 선뜻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몸살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0세기에 가능했던 ‘일방적인 힘’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 인류 전체가 서로 서로 나누는 시대라는 얘기다.

“요즘 이민자들이 이같은 흐름을 이끄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캐나다 주류 사회도 이민자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환경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만큼 이제는 서로가 나누고 배워야 한다.” 이 목사에 따르면, 이른바 주류 사회도 이제는 이민자에게 ‘베푼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이민자들로부터 그만큼 많은 영향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는 더 크게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새로운 조류에 동참하고 또 그것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면 이민 생활의 자세가 달라 질 터이다. 비록 공장에서 밥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의미를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이 주 의원, 연방의원을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류 사회와 다른 민족에게 손을 먼저 내밀고,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이 목사가 보기에,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민족인 이웃집 사람들을 초대해 커피라도 마시면서 정을 나누면 된다는 얘기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한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세계인에게 열린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미국에 있는 한국 교회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토론토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

토론토 한인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목사는 스스로 주류사회에서 담을 쌓아버리는 일, 스스로 ‘게토’를 만드는 일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블루어 한인 거리는 모국 서울의 80년대 풍경이다. 토론토 다운타운의 풍경과도 거리가 한참 멀다. 모국에서도 뒤처지고, 주류 사회에서도 뒤처진 ‘게토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같은 게토에서 2세들은 탈출만 꿈꾼다. 그들이 마음을 붙이고 싶어도 한인사회는 그들을 몰아내는 형국이다. 그들이 토론토 한인사회에 두 발을 딱 붙이고 서서 주류 사회 및 모국을 향해 일을 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한인사회는 그들을 붙들어둘 만한 매력이 별로 없다. 스스로 담을 둘러치고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서로가 나누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담을 둘러칠 것이 아니라 자꾸 자꾸 손을 내밀어야 한다. 세계는 급진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다만 생존을 위해 게토에 머무른다면 너무 아쉽고, 힘들고, 불행하지 않은가. 이제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인터뷰 2003 년 12 월 23 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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