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빈민들의 길잡이 '한인 수녀 3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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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빈민들의 길잡이 '한인 수녀 3총사'
  • 계정훈 재외기자
  • 승인 2011.02.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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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허헬레나 수녀, 이세실리아 수녀, 최아나스따시아 수녀.

1877년 복녀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창립한 교황권 하에 속하는 수도공동체인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Franciscanas Misioneras de Maria, 이하 FMM) 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 관구(관구장 이세실리아 수녀)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오늘날 76개 국가에서 국제 다문화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80개 국적 7,000여 자매들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누구에게나 갈 각오가 돼 있는 수도자들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파견된다.

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 관구는 현재 10여 개국의 72명의 수녀들이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세실리아 수녀(비자 이따띠)를 비롯해 최아나스따시아 수녀(살따), 허헬레나 수녀(우루과이) 등 한인 수녀 3명도 포함돼 있다.

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 관구는 FMM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살며 그들의 생활양식 속에 묻혀 각자 일자리를 구하고 자급자족을 하면서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관구와는 달리 공동체 내에서는 모두 계급 없이 평등하고 수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사역을 하는 점이 특징이다.

관구장인 이세실리아 수녀는 지난 81년부터 남부 뜨렐레우 지역에서 약 10년 간 인디오 마뿌체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이 빼앗긴 토지를 찾아 주는 운동을 주도하며, 문화와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도왔고, 2000년부터 비자 이따띠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 수녀가 뜨렐레우 지역에서 사역할 당시 홀로 산골에서 양, 염소를 사육하며 살아가는 마뿌체 ‘마리아노 할아버지’를 1년에 2~3회에 걸쳐 방문하곤 했다.

추운 지역이나 장작을 구하기 어려워 말똥을 말려 불을 피우던 80대 허름한 옷의 노인은 방문 시 안부를 물을 때 마다 “Con el favor de Dios, estoy bien!(주님 덕분에 잘 지낸다)”고 말했고,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으면 “Que mas puedo esperar, hermana siempre me visita(수녀님이 항상 찾아줘서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지주들에게 땅도 빼앗기고 악 조건에서 살지만 항상 환하게 웃는 마뿌체 노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이 수녀는 그 때 “가난한 이들의 삶이 진정한 복음의 삶으로 느껴졌고, 뭔가에 억매어 살지 않고, 하느님을 믿으면서 사람을 만나는 그 자체에 감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최아나스따시아 수녀는 99년 아르헨티나에 파견돼 뜨렐레우 지역에서 1년 반, 포르모사에서 2008년까지 사역하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살따 시의 빈민들과 생활해 오고 있다.

최 수녀는 포르모사 시절의 생활이 추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최 수녀는 포르모사 서쪽 ‘라구나 셰마’ 지역에서 인디오와 지역민과 함께 수공예를 만들어 팔며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다. 이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는 도시인들이 버리는 폐품들이 유용한 생활도구 및 공예품을 만드는데 재료가 되고 있다. 상자, 비닐, 맥주 캔, 심지어 선풍기 뚜껑과 맥주 플라스틱 통을 이용한 유모차 등.

한번은 판자촌에 불이 나 자녀 3명을 둔 미혼모가 집을 잃게 되자 공동체와 빈민구제 단체가 벽돌을 구입, 밤 9시 경에 모든 주민들이 모여 일을 시작해 3시간 만에 벽돌을 쌓고 미혼모의 거처를 마련하는 훈훈한 인정을 베풀었던 일을 최 수녀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허헬레나 수녀는 2001년 한국에서 파견돼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살따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본국에 다시 들어갔다가 지난해 6월부터 우루과이 몬떼비데오에서 빈민들과 생활하고 있다.

수도자들을 존중하고 조직적이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한국의 수도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접촉은 했지만 실제로 가난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허 수녀는 살따 시절 파출부로 일하면서 자신의 껍질을 벗고 그들과 동등한 레벨에서 생활한 게 인상에 남는다고 말한다.

어린 애를 돌볼 때 처음에는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싫었는데 6개월이 지나자 우는 소리에 사랑을 느끼게 됐고, 덧칠을 벗어버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 가난한 동네지만 항상 집에 초대해 식사를 같이 했던 순박하고 인정 많은 이들을 허 수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FMM 공동체는 본원에서 가난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점차 전 세계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경향이다.

FMM 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 관구 100주년을 맞아 이세실리아 관구장은 항상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있는 한인 성당의 신부, 수녀, 비센시오회, 부인회, 상록회, 교우들 및 이름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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