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특집보도 (2) 수면위로 부상 '재외국민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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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특집보도 (2) 수면위로 부상 '재외국민 참정권'
  • dongpo
  • 승인 2002.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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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재자 투표제 과거 실시하다 폐지 외국선 허용
재외국민 260여만명 憲裁 합헌결정 반박
관련법 개정 서둘러야
2002/11/21 005면 10:30:09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
우리 헌법 제24조는 이같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38조 1항은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국내 거주자'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외국민들은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선거전 미리 입국해 국내에 자리를 잡지 않는 이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비용과 시간 등 현실적인 문제를 따진다면 사실상 재외국민들의 투표권은 보장돼 있지 않은 셈이다.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한겨레네트워크 준비위원회'와 교포기자 등이 제기하는 재외국민들의 제한된 참정권에 대한 문제점 인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재외국민들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하위법에 의해 제한받고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출신 동포는 560여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한국국적을 보유한 사람은 260여만명에 이르며,이 중 유학생이나 상사 주재원,재외공관 직원 등 단기 해외체류 한국인도 30여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해외 부재자투표가 보장되지 않음에 따라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 뿐만 아니라 이민자가 아닌 유학생 등 단기 해외체류자들도 모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재외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지않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0개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OECD 가입국 중 우리처럼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과 이탈리아가 최근 잇따라 입장을 바꿨기 때문.

일본은 지난 99년 관련 법률을 개정해 지난 2000년부터 재외국민들의 부재자 투표권을 보장해 주기 시작했고,이탈리아도 선거법을 바꿔 오는 2003년부터 시행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재외국민에 대한 투표권을 원래부터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67년 6대 대선과 7대 국회의원 선거, 71년 7대 대선 및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들의 해외 부재자투표를 실시했었다.

당시 부재자투표 대상 4만여명 중에는 베트남 파병군인과 독일 광부?간호사,미국?유럽의 유학생과 교포 등이 포함됐지만 대다수가 군인에 집중됐다.

하지만 유신 정권은 지난 72년 대선 및 총선 부재자 신고 대상을 국내 거주자로 한정하는 쪽으로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 해외 부재자투표제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들은 사실상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파병 군인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시행되던 해외 부재자투표제가 폐지된 시점이 베트남 파병 군인 철수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린다는 사실에서 당시 정권의 '불순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따라서 해외 부재자투표제는 재외국민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 '반짝' 실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30여년간 투표권을 제한 받아온 재외국민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제기된 2건의 헌법소원.

당시 파리에 살던 유학생과 국책은행 주재원 등은 해외에 임시 거주하는 국민도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38조 1항 등에 대해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또 재일동포 2세 8명도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헌법이 보장한 선거권 등을 침해받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모두 기각했다. 헌재는 △재외국민의 납세와 국방의 의무 불이행 △선거비용 증가 등으로 인한 국가적 부담 △선거 공정성 확보 곤란 등의 이유와 함께 재외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출국해 해외에 거주하는 만큼 부재자투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해외 파견 공무원 등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 해외에 근무하는 만큼 임의로 귀국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향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해 단기 해외체류 공무원과 군인 등이 선거권을 제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재외국민들은 헌재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한겨레네트워크 준비위원회 김제완(프랑스 교포신문 '오니바' 편집인) 공동간사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참정권은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천부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60년대에도 해외 부재자투표가 실시된 전례가 있는 만큼 비용과 공정성 확보 등 기술적인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과 관련한 논의가 없진 않았다.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은 지난 97년 당시 신한국당 시절 재외국민 138명과 여야 의원 12명의 서명을 받아 '재외국민 선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이어 지난 2월에는 민주당 정범구 의원이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갖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다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개정을 위한 서명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김제완 공동간사는 '더 많은 국민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등 국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재외국민들이 진정한 의미의 참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권은 관련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우기자 hooree@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