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외교부 내부통신망에 ‘반성의 글’올린 홍배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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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인물> 외교부 내부통신망에 ‘반성의 글’올린 홍배관씨
  • 문화일보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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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2003-12-20 (오피니언/인물) 기획.연재 20면 03판 2738자    
  
    
외교부 직원 홍배관씨의 고해(告解)에 대한 외교부의 반응은 차가웠다. 홍씨가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는 두 달 동안 불과 두어개의 ‘댓글’만 올라왔고 그 내용도 ‘뜻은 좋지만 너나 잘 해’ 따위의 냉소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지난 18일 처음 보도가 나온 뒤 외교부 고위 관리는 “문제의 글이 과거 사례 중심이고 기탄 없는 토론을 장려한다는 차원에서 참고만 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뒤늦게 “감사를 벌여 사실 여부가 확인되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를 본 홍씨, 그리고 홍씨와 같은 경험을 한 제2, 제3의 홍씨들은 심한 좌절과 굴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물론 외교부로서는 억울한 면이 적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일부 공관장이 저지른 비행 사례만 갖고 아프리카 오지의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충직한 외교관들까지 부패 관료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또 참여 정부가 출범한 뒤 전면적인 조직 혁신을 위한 내부토론과 제도개혁을 진행중인 것도 사실이다. 국가 위상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쑥 자랐지만 여전히 70년대 수준의 인력과 예산만으로 외교전장에 나서야 하는 외교부의 안타까운 사정에도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외교부의 그런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를 일본 외무성의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2001년 3월 마쓰오 가쓰토시(松尾克俊) 외빈방문지원실장이 93년부터 6년간 기밀비를 과잉 청구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공금을 착복해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애인과의 유흥비로 탕진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이어 호텔비를 과잉 계상해 공금을 가로채거나 승용차 임차비용 쿠폰을 빼돌려 암시장에서 현금으로 바꾼 외교관들이 잇따라 구속됐고 공관 경비로 그림과 침구를 구입한 총영사가 면직 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비리가 터져나오자 일본 외무성은 혹독한 자기개혁에 착수했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당시 외상은 그 해 11월 무려 328명의 외무성 직원을 공금유용 비리와 관련해 인사 조치 했다. 간부들에 대해서는 1인당 수십만엔씩을 국가에 반납하도록 했다.
또 대대적인 조직 쇄신에 착수해 지난해 8월 종합적인 외무성 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에는 “외교관 부인들간에는 상하관계가 없음을 재확인 한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재외공관에서 하급자의 부인이 공관장 부인의 수발을 드는 관행까지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김재섭 외교부차관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홍씨의)글의 내용은 과거에 부분적으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이를 외교부 혁신을 적극 추진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본부 및 재외공관의 운영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고 재외 공관의 회계감사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국민사과도 했다. 외교부의 진정한 개혁의지가 스스로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한종호기자 idhan@munhwa.co.kr

<금주의 인물> '공관장 비리' 고발 외교부 홍배관씨  
    [문화일보] 2003-12-20 (종합) 기획.연재 01면 03판 899자    
      
한국 사회에서 ‘고발자’라는 단어는 고약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내부 고발’은 몸 담고 있는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동료를 곤란한 지경에 빠트리는 비윤리적 배신 행위, 혹은 비뚤어진 영웅주의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2년의 인물’로 연방수사국(FBI) 요원 콜린 롤리, 장거리 전화회사 월드컴의 감사 신시아 쿠퍼, 에너지 그룹 엔론 부사장 세런 뽍킨스 등 3명의 여성 ‘내부 고발자(whistle-blower)’를 선정했을 때 한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내부고발자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 내는 미국 사회를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묘사했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한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부 직원 홍배관씨는 지난 10월 내부통신망 내 토론방 ‘나눔터’에 자신이 보고 겪고 들은 일부 공관장들의 비행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난 89년 행정직으로 외교부에 들어와 14년간 예산 업무만 해 온 홍씨는 자신의 글에 ‘최소한 더러운 인간이라는 욕은 먹지 않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두 달만에 이 글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순식간에 여론의 관심을 모으는 인물이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내부 고발자가 ‘되어 버린’ 홍씨는 이를 무척 곤혹스러워했습니다. 홍씨는 전화를 건 기자에게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내부적 반성을 함으로써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며 “누굴 고발하자는 것도 아니었고 고칠 것은 고치자는 얘기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사코 사진취재를 “입장이 곤란하다”며 사양했습니다.
문화일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모순과 타협하거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의 희망을 발신(發信)함으로써 진보의 불씨를 피워 낸 홍씨의 뜻을 높이 사 그를 12월 셋째주 ‘금주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한종호 정치부차장 idhan@munhwa.com

■어떻게 선정했나
금주의 인물을 선정하기 위한 편집회의에서 먼저 거론된 후보는 사담 후세인 전이라크대통령.
그의 체포소식은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모았다. 아랍맹주를 꿈꾸던 독재자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고 눈물을 글썽이며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초라한 모습은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생포를 계기로 이라크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희망섞인 기대도 작용했다.
이어 추천된 후보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불법대선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하고 검찰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음으로써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추천됐다.
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후보로 올랐다. 지난 76년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에콰도르에 처녀수출한후 28년만에 연간 100만대 수출의 쾌거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얻었다. 수출액도 연간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2000여개의 협력업체와 직·간접고용효과 100만명으로 한국경제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주의 인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삼성과 대우에 이어 최근 쌍용자동차마저 중국에 넘어감에따라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다.
30세의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김형도 박사도 물망에 올랐다. 외국박사학위를 받지 않고서는 국내 유명 대학 강단에 서기 어려운 현실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토종박사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비서울대 출신이 서울대교수가 된것이 극히 이례적인데다 조기유학 열풍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또 외교부 내부통신망을 통해 고질적인 관료사회의 부패를 폭로하고 자성을 촉구한 홍배관씨도 후보로 떠올랐다. 내부고발자로서 주위의 비판을 무릅쓴 용기 있는 그의 행동은 관료사회의 부패를 다시한번 되돌아보게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독자들이 e메일(editor@munhwa.co.kr)로 추천한 후보 가운데 눈에 띈 이는 국내 전자공학의 선구자로 18일 별세한 오현위박사. 국내 전자통신공학 학사 1호로 1948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내는등 한국 정보통신 산업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이 추천사유였다.
이들가운데 최종후보에 오른 이는 정몽구 회장과 홍배관씨. 토론결과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비리척결을 위한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준 그를 격려하고,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바로 잡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홍씨를 금주의 인물로 최종선정했다.
박현수 조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