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시단]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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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시단]첫걸음
  • 김희정
  • 승인 2011.01.0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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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시인‧재일동포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둣 세상 모든 길이 사라졌다.

누군가 미울 때 꾸우꾹 눌러밟고 돌아오던 골목길도
쓰린 날 한 잔 마시고 비틀거리며 올라오던 언덕길도
평생 한 길만을 정직하게 달려온 기찻길도 모두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의 빈 자리는 서늘했다. 희고 부드러웠다.
이처럼 서늘할 수 있다면, 이토록 희고 부드러울 수 있다면,
지금의 이 슬픔도 언젠간 눈부신 추억이 되리라.

겸허한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순백으로 열려있는 세상에서
오직 나의 첫걸음만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다.
모든 길이 나의 발자욱을 따라온다.

새겨지는 발자욱 위에 더 깊게 새겨지는 스승님 말씀,
첫 걸음 함부로 내딛지마라 ,
혹시 나중에 그 길 따라 올 사람 있을지도 모르니…

아름다운 세상은 따뜻한 사람들이
눈송이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기에
하얗게 하얗게 물들어 가는 것임을 알기에
낮은 자세로 처음과 시작에 용기를 내어본다.

또박또박 찍혀지는 처음 위로
희고 부드러운 바람들이 소망소망(所望所望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