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태권도, 미국 공립학교 정규 교과과목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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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권도, 미국 공립학교 정규 교과과목 확산
  • 송수근 뉴욕한국문화원장
  • 승인 2010.09.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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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을, 뉴욕한국문화원장으로 발령받아 부임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지역 초등학교에서 태권도 수업 수료식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3시간 남짓 걸리는 곳까지 가야한다는 게 부담이 되었지만,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태권도 시범이라는 이야기에 시간을 내서 참석했다.

메사추세츠주 치코피 보위 초등학교 강당을 가득 메운 2백 여 명의 노랑머리 어린이들이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한 품새, 한 품새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차렷!” “태권!” 강당을 가득 메우는 파란 눈의 어린이들이 내는 우리말 기합소리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참석인사들이 한 학생 한 학생마다 하얀 띠를 풀러주고, 노랑 띠를 매줄 때 아이들은 너무도 자랑스러워했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나서부터 생활습관과 행동양식이 달라졌다고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원장으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솔직히 나는 ‘태권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문화를 효율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한국영화, 한국음식, 공연, 전시 등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했지만, 정작 태권도를 어떤 식으로 한국문화 홍보에 이용할 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미국 내 한국문화 홍보에 태권도가 상당히 효율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태권도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에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미국 땅에 본격적으로 태권도가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대부터였다. 이민 온 태권도 사범들이 미국 사회 곳곳에 태권도장을 열었다.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한 태권도장은 현재 미국 전역에 1만 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내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어떤 다른 기관보다 훨씬 많은 구체적인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동네 태권도장 중심의 태권도가 미국 공교육 체육교과과정으로 채택돼 들어가게 되는 과정에는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지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해왔던 김경원(미국태권도교육재단 이사장) 관장의 숨은 노력이 컸다. 그는 2001년 공립학교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태권도 교육을 시작해 정규과정 진출의 밑거름을 만들어왔다.

2008년부터 뉴욕한국문화원 주요 사업의 하나로 태권도의 미국 공교육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판단했다.

정규 교과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들에 태권도복을 지원하는 사업부터 시작했다. 역량 있는 사범들을 키워내는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2008년부터 공립학교 교장이나 관련 교사들을 초청해 ‘미 공립학교 교장 단 태권도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 실시 후 교과목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아울러 태권도 교육 효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 사업도 시작했다.

현재까지 80여개 학교에 1만5천벌의 태권도복을 전달했다. 이런 지원에 발맞추어 태권도를 정규교과과정으로 채택하는 공교육 기관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와 치코피시 교육구 내 총 30개 공립 초등학교에서 9천여명을 대상으로 8~12주차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2009년 이후에는 메사추세츠주 이외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2009년 워싱턴주 1개교, 미주리주 1개교, 노스 캐롤라이나주 1개교에서 태권도 공교육을 시작했다.

뉴욕의 경우는 2010년 뉴욕시 동서국제학교에서 봄 학기에 처음 시작한 것을 계기로 4개 공립학교에서 2010년 9월 가을학기부터 태권도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미 동부권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2010년 가을학기부터 LA 공립학교 6개교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으로 있다.

이렇게 태권도가 미국 공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부모들은 단체 교육,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태권도 교육이 학교 현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태권도를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또 자신의 일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습관이 배양된다고 말한다.

태권도가 그동안 미국교육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문화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한국문화가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에 비해 일찍 미국 땅에 소개된 일본의 가라데나 중국의 쿵푸는 아직 미국 공교육 현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는 이미 UN가입국보다도 더 많은 나라에 보급되어 있다.

태권도가 미국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한국문화가 전 세계에 새롭게 보급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