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세리토스시 최초의 한인시장 조재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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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세리토스시 최초의 한인시장 조재길씨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0.08.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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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류정치 진출하는 한인들의 길이 되겠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합니다. 선거운동 하면서 영어 공부한 최초의 시장일 거라고 참모진들의 하소연이 끊이질 않았어요.”

LA 세리토스시 최초 한인 시장으로 당선된 재미동포 조재길씨의 웃음 섞인 고백이다.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W-KICA)는 지난 2일 세리토스시 최초의 한인 시장으로 기록된 조재길씨를 초청해 공로패를 전달했다. “지구촌 700만 재외동포의 위상을 드높이고 미주류 사회에서 지지를 받은 공로에 감사한다”는 것이 김영진 상임대표의 설명이다. 마침 이날은 조 시장의 자서전 ‘소명’이 처음으로 공개된 뜻깊은 날이기도 했다.

“그저 감사한 일이지요.” 조 시장은 공로패 수여에 대해 진솔하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한 조 시장을 본지가 만나봤다.

“영어 못해도 일 잘하는 시장”

한반도 바깥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바로 미국 LA에 위치한 세리토스 시다. “각 지역 아시아인을 통틀어 한국인이 가장 많은데도 한국인 시장은 물론이고 시의원도 없었어요. 중국인은 이미 80년대부터 시정공무원을 배출했죠. 제가 시장이 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리토스시에 한인 시장이 당선됐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죠.”

이같은 조 시장의 당선소감은 그의 자서전 ‘소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인 시장이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딱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제 뒤로 누군가 주류정치권에 진출할 의사를 가진 한인이 나온다면, 저는 그 분들이 밟고 지나가게 될 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제 소명이죠.”

한 번 뜻을 굳힌 후에는 거침없이 돌진했다. 영어를 못한다는 장애도 조 시장에게는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의회에서 ‘동의한다’ ‘제청한다’는 뜻으로 ‘모션’ ‘세컨드’라는 영어를 쓰죠. 그것조차 몰랐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막상 당선되고 나니 내가 한국인 망신이라도 시키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시장은 시정에 관한 한 모든 과정과 결과를 알아야 하니까요.”

조 시장의 설명대로 시장 당선 이후에는 더 많은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를 못하는 시장은 곧 지역민의 바람이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낙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곳(세리토스 시)에서는 물 문제가 중요합니다. 도시에서 상수도가 공급되고 세금이 거둬들여지는 전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그런 제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차츰 더 많은 응답자들이 저를 ‘열심히 하는 시장’으로 보아 주셨습니다. 아직도 영어는 잘 못해요. 그래도 일은 잘합니다.”

조 시장의 다부진 설명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만큼의 노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에 기여하는 것이 내 역할”


“갓 블레스 아메리카, 브링 피스 투 코리아(God Bless America, Bring Piece to Korea)”  조 시장이 내세우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조재길 시장은 자신을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항시 고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염원했다는 조 시장. 시장으로 당선된 지금도 자신의 정치적 역량이 한-미 양국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90년대 초 귀국을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교류하며 지냈던 이들이 이때 고국에 돌아와 정치적 입지를 다졌죠. 하지만 저는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미국 주류정치 진출에 대한 뜻을 세웠습니다. 미국에서 정치를 하는 것은 한-미 양국의 운명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제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가치입니다.”

이 같은 조 시장의 정치철학은 당선 후 그가 보이는 행보에 녹아 있다. 세리토스시는 지난 6․25를 기해 한국전 참전 군인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사업을 후원했다.

“한국에 다녀온 노병들이 ‘왕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며 감격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조 시장은 말했다. 이 초청사업은 세리토스시 지역신문 1면에 다뤄질 정도로 현지 지역주민들에게까지 이슈가 됐다. ‘잊혀졌던 전쟁’이 다시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한국전에 대해 많은 이들이 ‘포가튼 워(Forgotten War)’라는 별칭을 붙입니다. 하지만 저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언급하기를 회피하는, 얘기되지 않는 전쟁이죠. 이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내는 것 또한 제가 한-미 양국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시장은 앞으로도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하원의원 출마의 꿈 또한 미국 주류정치권에서 한인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조 시장의 정치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 인구조사를 통해 내년 선거구에 변화가 있을 겁니다. 현재 예상으로는 2012년 선거에 한인출마자에게 더 유리한 판도가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미국 주류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서는 분이 있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나서는 분이 없으면, 또 제가 나서야겠죠.”

조 시장은 이 같은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라톤 도전은 그 같은 노력 중 하나다.

“1년 정도 됐습니다. 작년 가을에 하프마라톤을 뛰었고, 올 초에는 전 구간을 완주했어요. 이제 저도 환갑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정치를 하는데 건강상의 이유가 걸림돌이 되진 않게 해야죠.”

20대인 아들보다 더 많은 구간을 뛴다는 조 시장의 넘치는 에너지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