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통 불가리아 이상종, 이장직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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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불가리아 이상종, 이장직 자문위원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06.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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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남과 북의 통일을 갈망합니다”
1962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유학생 이상종(사진 왼쪽), 이장직(사진 오른쪽)은 북한 대사관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철사로 꽁꽁 묶여 있었어요. 감시하던 여자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려고 옆방으로 간 틈이 있었어요. 이불 천을 잘라 서로 동여 맺고, 5층 대사관에서 끈을 타고 극적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이는 지난 8일 민주평통 해외협의회 행사에 참여한 두 명의 고령(74)의 자문위원이 들려준 스토리의 시작이다.

56년 불가리아로 유학을 간 이들은 북한 귀환을 거부해서 무국적 상태로 28년간 있었다.

“러시아는 기초, 헝가리는 의학, 독일은 기계분야가 강했어요. 북한에서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250명의 유학생을 해외로 보냈을 때였지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이들에게 소환명령이 떨어졌다. 자유의 바람이 든 네 청년의 정보 보고가 평양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소피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비토샤’산에 숨었다.

하지만 산 속에 숨어살다가 소피아 시내로 빠져나왔을 때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대사관에 모두 감금 돼버린 것.

다행히 나머지 두 친구도 소피아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지기 직전, 불가리아 당국의 개입으로 구출된다.

영화 같은 이들의 삶은 한 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1991년 불가리아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전 28년 동안 무국적자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삶이 보도됐던 것.

다행히 한국과 불가리아가 수교를 맺고 불가리아국적을 받고, 이들의 삶도 점차 안정을 찾는다.

“유학시절 같이 공부했던 젤류 젤레브 불가리아 전 대통령이 힘이 컸죠. 불가리아 공산주의가 붕괴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렸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회상하는 이상종 위원은 현재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또한 고등학교 때 토목과 관련한 공부를 했던 그는 현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현지 불가리아 여성과 결혼했고 아이들을 나았지요. 손녀가 서울대 경영대를 다니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장직 위원은 “북한에서 유학생들은 ‘수제’소리 듣는 엘리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17년간 소피아 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옆자리의 김경작 불가리아 한인회장은 두 자문 위원에 대한 설명을 도왔다.  “어느 자문위원보다 이분들만큼 평화로운 통일을 갈망하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해외협의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일 것이라는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