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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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타운
  • 남혜경
  • 승인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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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부근 호프집에서 일명 "우즈베키스탄 번개 모임" 이라는것이 열렸다. 우즈베키스탄 관련 인터넷 싸이트를 운영한다는 사람, 한때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우자동차 관련 일을 했다는 사람, 그리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 가고 싶은 사람. 또 통역일을 하는 사람등 열두서명의 남녀가 모여있었다.

그중에는 얼마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왔다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얼굴 한번 보고, 말도 안통하는 낯선이와 평생을 약속하고 돌아온 이 남성은 그녀를 한국으로 불러올 준비를 하면서 뒤늦게 갖가지 불안에 빠졌단다. 두번째 결혼에도 실패할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심으로 동거를 시작하기전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듣고 싶어 이 모임을 찾아나서게 됐다는 것이었다. 얼굴만 보고 한국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이 얼추잡아 3천명은 될 것이란다.

#그림4

  이들은 늘 이 주변에서 모임을 갖는단다. 한국에서 러시아를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동장 역 부근이 러시아 색깔을 짙게 띠게 된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일명 먹자 골목으로 불리우는 광희동1가를 중심으로 을지로 6가와 7가는 어떤이는 "러시아 타운"  어떤이는 "몽골타운"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몽골인들이 급속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주변은 밤낮으로 구소련 지역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동대문 시장 주변을 걷고 있자면 여기가 한국인가, 러시아 인가 하고 주위를 한번 둘러볼 정도이다. 사무실 유리창이나 벽 간판엔 러시아 상호가 가득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노래방, 약국등도 러시아어 광고를 잔뜩 붙여놓기도 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음식전문점 만도 한골목에 10개 이상이 되고 2개월 전엔 그 지역 빵 만 전문으로 구워 파는 베이커리 겸 카페도 생겨났다.

관할파출소에서는 이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를 약 150명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의류를 사러온 상인들은 대부분이 이 부근 여관에서 묵고 있고, 장기 체류자들이 이부근 여관방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어 이런이들을 합치면 이의 몇배가 되는 인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고 있다고 봐야할것이다.

이곳에 "러시아  타운" 이 형성된것은 언제인가?  
1994년 처음으로 구소련지역에 항로가 열렸다. 스타트는 서울과 하바로브스크 간 직항로. 그 후로 앞을 다투듯 모스크바, 사할린, 타슈켄트, 알마티, 우란바틀 행 직항로가  열리고 지금은 어느 지역이든 1주일에 적어도 2편 이상의 항공편이 뜰 정도로 사람들의 교류가 늘어났다.

항공편이 없어 배편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부산이 구소련지역 교역의 중심지였고 부산역에서 국제시장까지의 긴 중앙통이 러시아어로 범람했었다. 그런데 항공편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서울로 옮겨지고 지금 부산의 러시아 통은 쓸쓸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한국을 부지런히 드나드는 이들은 봇따리 장사꾼들이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돈이 되는 시절이 왔고 국내환경이 변한것 또한 항공편 이용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러시아 경우 , 90년대 중반까지는 세관 관계법규가 미비해 냉장고 같이 덩치가 큰 상품들까지도 관세 없이 자유롭게 가지고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관 감시가 심해 일일이 관세를 물어야 하니 예전처럼 뭐든지 닥치는 대로 사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세관의 눈을 피할수 있고, 운송비가 비교적 적게 들면서 부가가치도 높은 것은 의류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주문생산이 가능해 진것이 동대문일대에 러시아 타운이 형성 된것에 일조를 했다. 구 소련지역 상인들은 초기에는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만든 의류를 구매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체형이나 취향이 한국인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멀리 몽고에서도 장사꾼들이 찾아 들면서 하나의 상권이 형성되고, 주문생산(소량의)시스템이 갖추어져갔다.  
그러면서 봉제공장이 많은 이 지역에 더욱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 것이다.  아예 한국에다 회사를 차려 직접 그들의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기가 아주  4-5년전에는 교포들이 차린 의류회사가 이 부근에 만도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상권이 많이 이전됐다는 요즘도 국립의료원 근처 허름한 빌딩을 들어서니 교포들이 직접 운영하는 의류회사가 층층마다 빽뺵했다.
한 곳을 들어가 벌이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구-요즘은 어려워요. 러시아에도 워낙 싼 중국물건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요. 그런데다 한국에서 나간 회사가 거기서  똑같은 원단과 디자인으로 물건을 만드니까 한국으로 오던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 버려요. 그 때문에 문닫은 회사가 많아요.  중국 사람들 무서워요. 러시아 말도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잘 해요.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통역 같은 일거리도 없어요.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져요”

사할린 교포가 운영하는 아동복 전문 의류회사였다. 직원이 넷. 모두 사할린 교포 2-3세였다. 이들은 대개가 동대문  부근 여관에서 생활한다.
동대문 밀레오레나 광희동 먹자골목 주변에는 허름한 장급 여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봇다리 장사꾼들은 물론이고 장기체류하는 사람들도 여관생활을 한다. 걸어서 직장에 갈 수 있어 좋고, 물건을 하러 온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물건을 사서 날라야 하니 자연히 봉제공장이나 의류회사들이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 숙소를 정하게 된다.
장기체류자의 경우, 한달에 4-50만원을 내고 여관방 하나를 빌려 살고 있단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2003년 1월 현재 한국내 외국인 거주자 수는 63만명이다. 그 중 29만명이 불법체류라고 한다. 그 중 러시아 국적을 가진 이가 4626명, 우즈베키스탄이 7540명, 몽골이 1만 3638명이 있다고 한다.

구소련지역 출신 불법체류자들의 증가가 러시아 타운 형성에 또한 일조를 했다.  
이 지역 선주민은 사할린 교포들이지만, 그들은 한국어에 능통하고 생활습관이 한국적이다. 그래서 쉽게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일찌기 한국을 드나들며 통역 일이나 장사를 시작했고 회사를 차린 사람들도 사할린 교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들이나 타 민족들은 말도 안 통하고 입맛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인구가 늘면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몇군데의 식당을 돌아보니 추측대로 손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이거나 타민족이었다. 그렇지만 식당 주인은 대부분 교포이다. 임대를 하려면 한국에 연고가 있는 교포들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주인은 부모님들의 고향이 남한인 사할린 교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지 10년이 넘었지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경제난은 계속되고 이들 지역으로부터의 불법취업, 불법체류자 또한 늘어가고 있다. 한 때 한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 행이 있었던 것 처럼 러시아나 CIS지역 사람들의 코리안 드림 행이 시작된 것 일까? 게중에는 한국에서도 기업을 일으킬 만큼의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한국 생활,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사뭇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