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우익의 조선학교 습격… 그래도 희망은 있다
상태바
[칼럼] 일본 우익의 조선학교 습격… 그래도 희망은 있다
  • 강성봉 본지 편집국장
  • 승인 2009.12.28 1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성봉 편집국장
동포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재일동포사회에 대해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해왔다.

조국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성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민주화의 진척으로 국민 대중의 삶이 점차 개선되어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들의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와 관련한 일본의 정책은 탄압과 동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일본우익들의 발호는 주기적으로 반복돼 재일동포들의 삶을 피폐하게 해왔다.

재일동포의 주축은 일제 강점기에 징용 또는 징병으로 일제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일제 때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지배 민족인 일제의 노예로 살았다. 1945년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조국이 남북으로 찢어지고 남과 북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그대로 일본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은 재일동포 사회에 그대로 전이되어 동포 사회는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수십년간을 반목해 왔다.

재일동포 사회의 분열은 주류 일본인들의 멸시와 천대의 또 다른 원인이 되어 동포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우익들이 교토조선제1초급학교로 몰려와 난동을 부린 사건에 대해 일본의 시민사회가 대응하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재일동포들의 앞날에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4일, 일본 교토에 있는 교토조선제1초급학교에 ‘재일외국인들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은 시민의 회’(이하 재특회) 회원들 10여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간첩의 아이들”, “조선학교를 일본에서 쫓아내라”, “조선학교는 학교법에 따라 설치된 학교가 아니다. 불법학교는 당장 여기서 물러가라”고 확성기로 외쳐대는 등 소란을 피우며 아이들을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몰아넣고 재일동포와 우리민족을 모욕하는 온갖 욕을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제1초급학교는 교토시와 마을 주민회의 승인을 받아 1960년대부터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을 학생들을 위한 운동장으로 사용해 왔다. 재특회 회원들은 공원을 조선학교가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다가 시 당국이 이를 방치하고 있어 자신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학교와 공원을 연결하는 스피커 전선을 절단하는가 하면 학교 소유의 조회 연단을 교문 쪽으로 내던지기도 했다.

공원을 학교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항의라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이며 이민족 배척의 구실에 불과하다. ‘납치’ 문제, 미사일 발사, 핵개발 등으로 북한에 대한 일본사회의 혐오감이 이러한 폭거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난동을 일으킨 재특회는 총련뿐 아니라 민단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정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요구하고 있는 민단의 요구에 대해 이들은 공식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익들의 이러한 만행에 대응하여 ‘평화력 포럼’, ‘재일조선인 인권 세미나’ 등의 일본 시민단체들이 우익 배타주의자들의 민족차별행위를 물리치고 교토조선제1초급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난 19일 도쿄 이이다바시의 ‘시고토 센터’에서 개최한 집회에는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50명 정원인 방에는 2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대회장 밖까지 참가자들이 넘쳐났다.

참가자 중의 한명으로 ‘재일조선인 인권세미나’의 회원인 고가와 변호사는 “범죄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들이 업무를 포기하고 있었다. 이는 범죄공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면서 “일본사회의 차별의식과 문제가 표현의 자유란 말로 지켜지고, 지켜져야 될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말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선 재특회 멤버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사전방지하기 위하여 자원봉사자로 30명의 방위대가 조직됐다.

그 중심적 역할을 맡은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회’의 미키씨는 “선량한 사람들이 선량한 마음을 안고 발언하려고 할 때 이를 방해하는 것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오늘처럼 집회하려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집회 주최자들이 경비, 방위를 생각하지 않고 집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내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하였다.

방위대에 참여한 보육사를 하는 한 여성은 “아이들이 입게 된 마음의 상처를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해 봤는데 이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무사히 집회가 끝나서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남기고 회장을 떠났다.

어린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재특회의 난동은 동포 사회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그에 대한 일본 시민단체들의 성숙한 대응은 일본사회에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사회의 선량한 다수 시민은 재일동포와 같은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