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막걸리가 잘 팔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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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막걸리가 잘 팔리는 이유
  • 이종환 본지편집인
  • 승인 2009.11.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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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본지편집인
얼마전 EBS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다.  ‘사진작가 김홍희의 짐바브웨 방랑’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짐바브웨 토속주를 원주민과 같이 나눠서 마시던 장면이었다.

“우리 막걸리와 맛이 너무 닮았어요. 지구 반대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예요”

술잔을 비운 김홍희 작가가 신기한 듯 코멘트했다. 짐바브웨에도 막걸리와 똑 같은 맛의 술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보면 막걸리의 인기가 요즘 국외로 퍼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짐바브웨 사람들처럼 우리 막걸리와 같은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세계 다른 곳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 우리 막걸리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수출된 막걸리 5천457킬로리터 가운데 89.6%가 일본으로 수출됐다.

일본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라는 게 아사히신문의 소개.이 신문은 최근 동경에 막걸리 전문바(Bar)까지 출현했다고 보도했다. 동경 이타바시에 있는 ‘오렌지’라는 이름의 막걸리 전문점이다.

이 집에서는 서울과 경기의 막걸리는 물론, 전주와 제주의 막걸리도 들여와 팔고 있다고 한다.

“전주 막걸리의 자랑은 물이 좋다는 거지요. 전주지역 지하의 암반수를 사용해요”  “제주 막걸리는 한국에서도 팔지 않는 희귀품입니다. 제주 지하 암반수로 만들어요”  신문이 소개한 막걸리의 특징들.

동경 고마고메에 있는 불고기집 ‘대창원’도 제주막걸리를 손님들한테 내놓고 있다. 대창원 사장은 아버지의 고향이 제주도여서, 그립기도 해서 가져와 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막걸리의 어떤 맛이 일본인들을 사로잡았을까? 막걸리의 맛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좋은 막걸리는 달고 시고 쓰고 떫은 네가지 맛이 어울려서 청량감과 감칠맛을 낸다고 한다. 다른 술보다 도수가 낮은 데다 각종 영양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웰빙 식품으로 제격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갓 나온 막걸리가 맛있을까? 아니면 며칠 지난 것이 맛있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얼마전 불어닥친 와인 열풍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한때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휘몰아친 와인 열풍은 국내 와인 소비를 크게 증가시켰다. ‘소믈리에’라는 이색 직업이 귀에 낯설지 않게 된 것도 이 열풍 탓이다.

와인은 포도밭과 생산년도, 블렌딩 방식에 따라 맛도 가지각색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기호도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이건희 전회장은 보르도산 샤토 라투르를 좋아한다는 보도도 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에서 앤 헤서웨이는 이태리산 듀깔레 리제르바를 즐겨 마신다.

그런데 우리 막걸리는 어떨까? 햅쌀로 빚어 청와대에 납품되면서 인기를 끈 ‘막걸리누보’는 서울탁주나 이동막걸리, 국순당생막걸리와는 맛이 어떻게 다를까?

이런 의문을 품던 차에 일본의 막걸리 인터넷 판매 사이트가 눈길을 끌었다.  ‘e막걸리’는 일본에서 막걸리를 통신판매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막걸리를 맛에 따라 구분해 소개하고 있다.

단맛에 별 다섯개, 신맛에 별 3개를 붙인 막걸리가 있는가 하면, 단맛에 별 세개, 떫은 맛에 별 두개를 붙인 막걸리도 있다.

다른 판매사이트도 비슷하다. 막걸리의 맛을 단맛 신맛 쓴맛의 강도에 따라 나누면서, 구매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고 있다. 마치 신맛과 단맛, 떫은 맛에 따라 종류를 나누는 와인과 같은 구분법이다.

일본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러한 마케팅 방법의 덕을 본 것은 아닐까? 차제에 한국에서도 이 같은 구분법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막걸리는 와인처럼 맛 기준을 엄격히 지키기 어렵다고 할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진행돼 신맛이 많아진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맛 구분 없이는 명품 막걸리가 탄생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신맛 단맛 떫은 맛을 우리가 규격화하지 않으면 일본 ‘맛코리’에서 먼저 할지 모른다.

끝으로 덧붙일 게 있다. 술은 문화라는 것이다. 와인은 와인잔이 있고, 마시는 매뉴얼도 있다. 위스키나 중국 백주도 마찬가지다. 멋진 막걸리잔에 우리식 매뉴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