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 아르헨 동포를 위한 강연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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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아르헨 동포를 위한 강연회 마련
  • 계정훈 재외기자
  • 승인 2009.10.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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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시인 신달자 씨가 17일 오후 4시 아르헨티나 한국학교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장장 두 시간에 걸친 강연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가 만났습니다 !!!’로 테마를 정한 강연회에는 이은경 교육원장의 사회로 진행됐고, 이영수 한인회장을 비롯해 문인협회 회원들 및 많은 교민들이 참석해 신 시인이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진행한 강연에 흠뻑 빠져 들었다.

먼저 이영수 한인회장은 신달자 선생을 모시고 교민사회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마련해 준 문인협회 및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이런 좋은 일들이 동포사회의 영양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강연에 앞서 신 시인의 시 ‘생명의 집’과 ‘핸드백’이 화면을 통해 배경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소개된 후, 시 시인이 동포들에게 인사했다.

신 시인은 아르헨티나 방문 동안 교민들의 따뜻한 정에 감사를 표하고, “고국을 떠나 왔지만 굳은 각오로 열심히 공부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 동포들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이제는 격리 된 세계가 아니고, 여러분의 결정으로 선택 된 나라에서 사느니 만큼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며 한국과 아르헨티나에 대한 사랑 및 동포애와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 시인은 참석자들에게 한국에서 중ㆍ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면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다 같이 낭송하도록 주문했고, 이 시를 자신과 어머니의 인생과 연관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대학 2학년 시절 피천득 교수가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누님’의 나이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누님의 나이는 갓 40대를 넘었던 것으로 추정하면서 신 시인은 어머니의 삶과 비교를 했다.?

시집와서 딸 만 6녀를 낳은 어머니,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을 운명에 질질 끌려가며 살던 시대를 현대와 비교하면서 이제는 당당히 우리 인생 앞에 설수 있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이라고 신 시인은 말했다.

그는 특히 어머니날을 맞아 어머니란 존재의 내적 힘을 강조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에게 한 세 가지 말,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돈도 벌어야 한다, 행복한 여자가 되거라”란 말이 자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파산하게 되고,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외롭다’는 문구가 자신이 문학을 하게 된 동기가 됐다는 신 시인은 수필집에도 어머니ㆍ아버지에 대한 글이 많이 등장한다며 “외로움은 적이 아니고 그냥 잘 사귀어야 되는 친구”라고 조언했다.

대학시절 열애에 빠져 결혼한 신 시인은 35세 때인 1977년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2000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세 딸을 둔 어머니로 남편을 간호하고, 가장역할을 하며 갖은 역경 속에 생활하다가 결국 50대에 교수가 됐고, ‘백치애인’,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돼 어머니의 세 가지 교훈 중 ‘평생 공부하고 돈도 벌어야 된다’는 두 가지가 성취됐다고 한다."

마지막 ‘행복한 여자가 되라’는 “자신의 현실을 껴안으면 행복”이라고 썼을 때 세 가지를 다 이뤘는데 그때 나이가 50대였다고 말해 동포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이날 끝 순서로는 신 시인의 시 ‘열애’가 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아름다운 감동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