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초대석 '조선족 희망' 서경석 목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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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초대석 '조선족 희망' 서경석 목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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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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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제도 희생자...정부에 근본잘못"
조선족 동포 국적회복 운동에 온몸 던져

     (서울=연합뉴스) 이명조 기자 = `우리는 이 땅을 떠날 수 없다' `조선족 동포들
에게 고향에 와서 살 천부적 권리를 인정하라'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 이틀째인 18일 아침 서울 구로구 구로중학
교 담벼락 옆 `서울조선족교회' 정면에 힘없이 내걸린 플래카드다.

    얼른보면 공장 기숙사나 합숙소 정도로 착각될 허름한 외관은 `총력  전도운동'
이란 복음 캐치 프레이즈를 반듯하게 내건 인근 교회와 눈에 띄게 대비된다.

    건물안 한쪽 벽면에는 간병 가정부, 인쇄소 보조, 금속분리 수거작업자 등을 구
한다는 손바닥 만한 구인 안내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광고판 주위로 `여자숙소' `내과' `한방' `산부인과' `인권센터' `컴퓨터실'
등 교회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방마다 단속의 눈길을 피해 모
여든 조선족 동포들이 빽빽이 들어앉아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지하 1층에서  지상3
층까지 방방이 합치면 족히 300여명은 넘어 보였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서성대는 `거주자'들에게 물어 물어 `담임목사실'이란  팻말
이 걸린 화장실 옆 쪽방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국적회복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5일째
단식농성중인 서경석(徐京錫.55) 주임목사를 만났다.

    불과 두어평 남짓되는 골방에서 야전용 담요 한장에 의지해 밤을 지샌듯 핼쑥한
얼굴의 서 목사는 "단식할땐 그래도 하루중 아침이 제일 견딜만해요"라며 잠시 여유
를 보인 뒤 "최근 이라크 갔다와서 아직 옷도 한번 안갈아입고  ..."라며  안쓰러워
하는 주위사람들의 걱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말문을 열자마자 고향땅에서 이방인 처럼 남의 눈치를 봐가며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이 당당하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역설하
는 그에게선 단식농성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단호함과 의지가  배어났
다.

    "목사님! 지하에서 농성하던 양반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요..."  "빨리  빨리,
앰뷸런스 부르세요!" 갑자기 담임목사실로 숨가쁘게 뛰어와 긴급상황을 전하는 조선
족 아주머니와 서 목사의 화급한 대화가 인터뷰를 가로챘다.

    곧 재개된 인터뷰는 수시로 걸려오는 휴대전화 벨소리로 중간중간 동강나긴  했
지만 담임목사실과 조선족 문제를 다루는 대담장으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그들이 범법자라면 우리가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요. 잘못된 제도의 희생자인데
교회가 가만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정부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저
희로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
리'를 제기하게 된 겁니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운동에 동참해 국적회복 신청을 한 조선족 동포는
5천641명에 달하고, 지금 8개 교회에 흩어져 단식농성중인 조선족만도 무려  3천120
명이나 된단다.

    그가 설명하는 국적회복 운동의 근원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당시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한반도에서 살수 없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인  조선족
동포들이 해방 후 북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 귀국길이 막히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
한 것이 발단이다.

    이들은 1948년 5월 11일 공표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와 제헌헌법 부칙  10조
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1992년 한중(韓中)  수
교 당시 이들의 국적에 관한 협약체결을 도외시하고 수교 후 귀환마저 허용하지  않
아 이들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중국국민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정부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국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 것이죠. 우리는 이 점이 위헌이라고 생
각해 헌법소원을 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 목사는 "한중수교 직후엔 이들이 몰려오면 노동시장 교란 등의  문
제가 우려돼 받아들이기 힘든 사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3D업종의 인력난 △인구 감소추세의 고령화 사회 △중국진출  국내기업의  조선족
인력 수요 등을 들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의 일등공신으로 여겨지는 조선족들은  한국국적을  취득한
뒤 일정한 훈련을 거쳐 다시 한국기업의 일원으로 중국에 재진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추가 설명도 곁들였다.

    국적 취득자가 대거 몰려들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정작 국적을 취득할 사
람은 60만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서 잘 사는 동포는 중국국적과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만일 입국자가 쇄도하더라도 △성년에 한해 국적취득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
국적취득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영주권을 먼저 취득하도록 하거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국적을 주는 방안 등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왜 그가 조선족의 대부가 됐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 대목은 강연하듯 이어진 답
변 중간에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는 동포들을 외면했어요. 그런데 작년  9월3일
옌볜 자치주 5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옌볜을 보고나서 너무  절망했어요.  조선족의
미래가 없다는 걸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고민끝에 시작한 것이  `고향
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아주자는 운동입니다."

    그가 주도적으로 펼치는 조선족 국적 회복운동에는 지금 급물살을 타고 있는 조
선족의 한족화(漢族化) 현상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담겨 있다.

    만주족, 여진족, 말갈족, 티베트족 등 수많은 주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동
화시켜온 중국의 조선족 동화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이어서 20-30년만 지나면 중국
동포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한국의 고향땅에서 추방당해 중국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면  2
세들을 조선족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모두 한족학교로 옮겨 중
국말을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말을 잃어버린 조선족이 만일 미국에 가면 차이나타운
으로 가지, 왜 코리아 타운으로 가겠습니까?"

    --정부에 탄원서를 낸 적은 있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정부가 이미 우리 주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혈통주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혈통주의건 뭐건 옛날에 여기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눈가리고 아웅이죠.

    --한때 문제가 됐던 재외동포법은 정비가 됐나요.

    ▲정부수립 이전에 이주한 동포를 적용대상에서 배제해 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받
아온 재외동포법 시행령 조항에 대한 개정이 마무리돼 법적인 문제는 다 해소됐습니
다. 이 시행령개정을 문제삼아 중국정부가 항의공문을 보내온 것으로 압니다.  정부
로서도 재외동포법으로는 문제를 모두 풀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요.

    --단속 업무를 민간 합동위원회에서 하자는 안을 낸 적이 있던데요.

    ▲정부가 조선족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한꺼번에 결정할 수는 없다는 걸
압니다. 다만, 조선족 동포들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겠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
리를 인정하겠다'는 원칙을 한국정부가 분명히 하라는 것이 우리 농성의 목표입니다.
그에 앞서 딱한 사정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더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심사과의 기준
이 너무 엄격해 혜택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민간인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
키자는 것이죠.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민들이 조선족 동포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주자는 운동에  공감하
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국민여론이 냉담하면 문제 해결은 힘들어질테니까요.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노무현 대통령께는 후보시절 당시 경실련 토론회에서 이를 설명했고, 고건 총
리께는 일부러 찾아가 얘기했어요. 스무 명 가량의  국회의원들께도  역설했습니다.
모두 제 의견에 `맞는 말'이라고 동의를 해 놓고도 반응이 없어요.  급박한  현안이
아니라는 것이겠죠. 그러나 지금이 이 문제를 제기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뼈를 깎는 아픔을 갖고 절규하는 것이지요.

    --최근 이라크를 방문하고 온 소감은 무엇입니까.

    ▲지난 5일부터 6박7일간 지구촌 나눔운동 이라크 방문단 부이사장 자격으로 이
라크 현지를 답사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적은 숫자의  비전투병을  남부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복구가
아니라 민주교육이라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이라크는 지금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지식인 중심의 민주세력이 다투고 있습니다. 주변국들이 민주국가 수립을  경계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적극 지원하는 상황이어서 그들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큽
니다. 따라서 당장 전후복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민간인이 가서 민주세력을 돕고 민
주주의가 뭔지 알려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민군 협력 모델이 투입돼야 합니다.

    --`자랑스런 나라 만들기 운동'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공약만 제시했지,  `자랑
스런 나라'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내놓지 않더군요. 그래서 `국민소
득이 줄더라도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소박한
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내년 총선이 임박하면 기독교 세력을  총동원하는  방법으로
그 운동을 다시 전개해 볼 계획입니다.

    --중도 인터넷 매체 `업코리아' 창간의 산파역도 하셨다면서요.

    ▲`업코리아'는 중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매체입니다. 인터넷 매체들이  한편
으로 치우쳐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내 중간의  목소
리를 내기 위해 창간했습니다.

    --현실정치에도 관심이 적잖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95년 정치개혁시민연합(정개련)에 참여해 8개월쯤
정치를 해보고 나서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러브콜은
계속 받고 있지만요.

    --중국 동포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요.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이란 단체를 만들어 북한 돕기를 하던중 조선족  사
기피해자를 접한 것이 계기가 돼 동포들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조선족 교회는 언제 세웠습니까.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정체성 위기를 겪고 난 뒤 `내가 목사로구나. 목
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일 목회를 하기위해 조선족교회를 세웠어요.  99년
6월 20여명이 모여 시작한 교회가 지금은 동포사회를 대표하는 교회가  됐어요.  이
곳에서 엄청난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죠. 한국사회가 이 사람들의 절규를  외면
한다면 그건 너무 한거죠.

    --언제까지 농성을 할 계획입니까.

    ▲우리는 정부가 예스할 때까지 싸울 겁니다. 어제부터 농성자 가운데 실신자가
발생하고 해서 마음이 급합니다.

    mingjoe@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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