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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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어요”
  • 최선미 기자
  • 승인 2009.08.24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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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리포트 - 다민족평화축제로 활기 띤 연해주 고향마을

동평, 경희대봉사단원 구슬땀에
13가구 고려인 마을 ‘활기’ 돌아


▲ 지난 15일 연해주 고향마을에서 열린 8.15 다민족평화축제는 고려인을 비롯한 연해주 소수민족과 현지인이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즐기고 이해하고 즐기는 자리가 됐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여름 한낮은 뜨겁다. 14일 열기로 달아오른 한국산 중고버스가 연해주 순야센의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린다. 2차선이 될지 모를 좁은 길 양옆으로 간간히 낡은 단층 건물들이 보이고 풀을 뜯던 젖소들이 길을 막기도 한다.

20여 분간 달리던 버스가 멈춘 곳은 고려인 6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고향마을. 구소련 당시 ‘로지나(고향)’ 협동농장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이 자민족 우선정책을 고수하면서 보금자리를 잃은 고려인 일부가 이곳으로 재이주했다.

“순야센 고려인들이 다민족 평화축제를 연다고 해서 보러왔어요. 시카고에서도 8.15 축전이 있지만 연해주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보고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죠.”

고향마을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휴식을 취하던 림관헌 시카고한인회 자문위원의 말이다. 림 위원의 뒤편으로 알록달록 색칠된 벽돌건물과 경희대해외봉사단이 걸어놓은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경희의료원의 섭외로 한 달 전쯤 이 마을에 왔어요. 마을정비와 축제준비를 돕는 거죠. 곧 귀국하는데 아직도 손봐야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게스트하우스 건너편 길에 포크레인을 세워둔 김창선씨가 까맣게 탄 얼굴로 말한다. 그의 주변에서는 축제를 하루 앞두고 동북아평화연대 관계자들과 경희대봉사단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판넬에 마을 안내도를 그리고 장식물을 준비하는 학생들부터 말을 씻기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어른들까지 모두 맡은 일에 여념이 없다.

다민족축제는 고려인을 비롯한 연해주 소수민족과 현지인이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즐기고 이해하는 자리. 올해 3회째로 동북아평화연대와 동북아평화기금, 미하일로프카군(郡)이 공동주최했다.

“지난해에는 우수리스크 사범대 학생들이 주축이 돼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했어요. 올해는 고향마을을 무대로 고려인들이 좀 더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경희대봉사단원 130여명도 2주전부터 와서 일했죠. 한국만큼 시설을 제대로 갖추기는 힘들지만 방문객들을 맞을 준비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다민족축제를 총괄한 동북아평화연대 김윤령 부장의 말이다. 그는 덕분에 13가구 작은 고려인 마을에 활기가 돈다고 덧붙였다.

“잊혀진 우리 동포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왔죠. 축제 공연 프로그램에 참가하기에 앞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유치원과 놀이터도 만들고 고생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내년에 또 올지도 모릅니다.”

경희대해외봉사단을 인솔한 김희찬 교수가 15일 오전 유치원 개관식을 앞두고 말했다.

축제 당일인 15일은 아침부터 인근마을에서 축제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가 속속 도착하던 중이었다. 러시아 경찰들도 공연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주차하고 치안을 살폈다.

공연을 앞두고 마을 공터에 마련된 무대 주변에서는 페이스페인팅, 비즈공예, 물로켓만들기, 사진촬영 등 다양한 체험부스가 열려 참가자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이와 함께 일부 민족들의 창작품 전시회도 눈길을 끌었다.

“2009 다민족 축제를 시작합니다. 이제 공연 참가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태양이 머리 위로 높게 떠오른 시각, 사회자의 호명에 맞춰 화려하게 차려 입은 20여개 공연단체가 차례로 무대 근처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곧 우스리스크 고려인문화회 20명의 ‘오고무’를 처음으로 2시간에 걸친 공연이 진행됐다.

이날 고향마을을 찾은 이는 500여명. 러시아인을 비롯해 고려인, 조선족, 타타르인, 우크라이나인, 집시, 유태인 등 연해주 인근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20개 이상이 참여했다. 또한 미하일로프카군 체보트코브 군수 등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해 공연이 끝나도록 자리를 지켰다.

“너무 더웠지만 고려인과 소수민족들, 러시아인이 어우러져 공연하는 모습이 멋졌어요. 특히 머리색이 다양한 우수리스크 제3학교 학생들이 풍물공연 한 것과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한국어, 러시아어, 우즈베키스탄어로 부른 공연이 인상적이었죠.”

사회적기업 바리의꿈 여행팀과 함께 한국에서 연해주에 온 김유나씨의 말이다.

“공연 내용도 좋았지만 이번 축제 준비를 계기로 고향마을이 좀 더 정비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고려인 4세 김니카씨도 이렇게 말하면서 축제가 끝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우수리스크 사범대 한국학과에 재학중이다.

“저는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음식을 준비했어요.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아쉽게도 공연은 볼 시간이 없었죠.”

고향마을 주민인 고려인 로자씨가 비교적 능숙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의 옆에서 다른 주민이 샤슬릭을 굽고 있었다. 샤슬릭은 긴 쇠꼬챙이에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꽂은 후 숯불에 구워내는 음식으로 중앙아시아 민족들이 즐겨먹는다.

“대규모 인원을 살피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봉사단의 활동이 마을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어요.”

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사무국 김환수 농업지원 팀장의 말이다. 그는 축제가 끝난 후 새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러시아 전국방송에 고향마을과 인근의 우정마을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고려인의 이주로 연해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이기 때문이죠. 다민족 축제도 이런 맥락에서 협조를 구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죠. 또 최근 일본 NHK도 한국의 연해주 진출사례에 주목하면서 동북아평화연대에 취재를 요청해 왔어요.”

이번 축제를 공동주관한 동북아평화기금 김현동 대표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려인과 연해주 지역이 한민족 미래에 주요 ‘키워드’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