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님~~수정-동포문학선집, 서울지하철, 원코리아, 나라안팎기록문화상 넘치는 것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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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님~~수정-동포문학선집, 서울지하철, 원코리아, 나라안팎기록문화상 넘치는 것 고침
  • 송옥진
  • 승인 2003.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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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문학선집 임헌영 기사
‘해외동포문학선집’을 출간하겠다고 밝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임헌영 회장(중앙대 국문과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동포문학선집 출간 계기를 묻자, “정부의 동포정책부터 비판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임회장은 70년대 재일동포를 만나면서 민단과 총련으로 나뉘어 해외에서까지 민족분단의 현실을 실감하면서 동포문제에 눈을 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포사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했지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냉전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많지요. 문학을 통해 민족의식, 통일의식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동포문학선집에는 20세기까지 동포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담을 예정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20세기까지이고 이후의 작업은 후손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즉, 1999년까지 쓰인 소설, 시, 전기, 자서전, 수필, 증언록, 유행가까지 20세기 이민의 역사가 기록된 것들을 모아 국가별, 지역별, 작가별로 분류해나가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그 첫 작업으로 지난 10월 26일에 세미나겸 첫 편집회의가 있었다. 미국, 일본, 중국, 소련, 유럽, 기타 지역으로 6개팀의 기획위원이 결정되고 제작 원칙이 결정되었다.
“국내 동포 문학에 관심있는 연구자, 현지 문학 전공인 동포, 현지 문학인 등 3인이 함께 참여합니다. 우리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담긴 것들을 우선으로 예술성, 민족적 정서, 현장성을 기준으로 선발할 계획입니다.”
이번 동포문학선집에는 ‘작가론’과 ‘문학사’도 함께 정리할 계획이다. 50권 분량에는 약 1000여명의 동포작가의 작품이 실리게 된다.
“국내에서 해외 문인을 초청하는 사업들도 있었지만 아직 해외 문학인의 숫자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문학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선 올해말까지 해방전 중국 동포 문학을 책으로 발간해낼 생각이다. 그러나 2006년까지 ‘50권’의 동포문학선집을 만드는 일이 예산지원없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디서 지원을 받든 동포 문학을 정립하는 업적은 여원히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만한 국력을 가진 나라에서 이거 하나 못해내겠느냐 하는 자신감도 있구요.”
윤동주 시비를 발견한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대 교수, 중국 연변작가회의 김학천 주석처럼 쟁쟁한 인물들이 그와 함께 동포문학선집 정리에 나서고 있다. 그의 힘찬 도전이 해외동포문학선집 50권으로 완성될 날을 하루속히 볼 수 있길 바란다.


나라안팎 한국인기록문학상
지식산업사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 재외동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이 후원하는 ‘나라 안팎 한국인기록문화상’ 수상작 시상식이 지난 10월 24일 열렸다.
이번 ‘한국인기록문화상’에는 자서전 회상기 부문에 미국 L.A에 거주하는 이무호씨의 ‘어느 졸병이 겪은 한국전쟁’, 중국 하얼빈에 거주하는 이민씨의 ‘내 어린 시절’ 두편과 소설 부문에 서울에 거주하는 최운씨의 ‘수양재 사람들’ 3편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입선작으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사는 이금선씨의 ‘아이고 다리를 건너’ 외 4편이 뽑혔다. 문의는 지식산업사 734-1978.

지하철환승거리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 갈아타는 거리가 어지간히 길어서 갈아타는 시간이면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은 형편이다. 그렇다보니 전체 서울의 교통수단별 수송분담률에서 지하철은 고작 34.6%(2002 건설교통부)에 불과하다. 건설교통부는 그것도 97년 11.7%, 99년 15.1%, 2001년 19%였던 것에 비하면 증가추세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96년 교통센서스 자료에서 50%는 달성하리라고 예상했던 터다. 95년 파리의 교통분담률은 35%, 동경은 56%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왜 서울의 지하철의 이용률은 이렇게 낮은 것일까?
‘이용의 불편함’때문이다. 갈아타기 위해 걸어야 하는 환승거리,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접근거리가 지하철 이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서울시내 11개 주요 환승역의 환승거리는 평균 162.4m. 이중 수직이동거리가 37.1m, 수평이동거리가 125.3m를 차지하고 있다. 갈아타기 위해서는 평균 3분 이상 걷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재외동포들이나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시청역은 176,6m, 종로3가는 187,7m다.
버스정류장까지의 소요시간은 평균 6.8분, 지하철역까지는 그 두배인 평균 13분이다. 이 외에도 나쁜 공기, 복잡한 안내체계 등이 지하철 이용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처럼 서울 지하철이 불편한 이유를 전문가들은 건설계획당시부터 ‘노선확장’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도시연대 문병섭 연구실장은 '지하철, 대중교통수단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시민에 대한 서비스 개념없이 교통수단 수송분담률, 1일 수송인원 같은 행정적 개념만으로 노선 확장을 해온 탓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환승역이 장기적인 노선계획이나 환승에 대한 고려없이 그때그때의 노선계획에 따라 위치를 결정해서 한지점에서 갈아타기 편리한 시설여건을 미리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용자들의 동선은 생각지 않고 서울시내 역세권을 중심으로 무조건 이용객수를 높게 잡아 지하철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시간이 더 걸림에도 이용의 편리함 때문에 여전히 버스를 선택하고 차가 막혀도 자가용을 끌고 나오게 된다. 버스를 이용하는 이유가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가 가장 높은 순으로 꼽히는 것만 봐도 지하철 환승이 얼마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버스 노선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들은 어쩔 수 없이 노선이 정확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이용객수가 적은 지하철은 만성 적자에 시달려 새로운 편의시설 설치에 예산투입도 쉽지 않다. 그나마 종로3가역에 설치된 무빙트랙처럼 서울시가 노약자나 장애우 등을 위한 시설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부디, 서울시민이나 서울을 찾는 재외동포들이나 지하철을 ‘편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길 바란다.


원코리아페스티벌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을 다녀왔다고 얘기하지 말란다. 오사카는 한국이라며······.카메라를 이고 이곳저곳을 찍어보니 과연 한국의 시장골목이더라.스쳐가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코끝에 여운을 남기는 좁은 골목길이며 금방이라도 열릴 듯한 느슨한 가게문,옆 골목 어딘가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자전거바퀴소리가 낮게 깔린다.사람 사는 곳 어디가 다르랴. 하기엔 어둠까지 닮았다. 아,저기 저 불빛은 무엇인가!
“아·리·랑·식·당”        
고개 숙인 신랑각시 인형이 손님을 반기고, 없는게 없는 차림표까지 모든 것이 이곳에 다 모였네······.그렇지만 알 수 없는 적막감은 나를 수그러지게 했다.눈에 보이는 살림살이만으로는 움직이게 만드는 무엇인가 빠져있는 듯 하다.
살림살이는 계곡에 자리 잡은 바위같은 것이다. 물길은 바위를 타면서 모양새를 다듬는다. 색깔을 입히고 빛깔을 새긴다. 그러면서 부딪친다. 그렇게 순환한다. 그 물길이 내 안에 흐르는 것일까? 지금 이 요동치는 느낌은,그 뭉클함은 무엇인가?
핏줄이구나! 그러나 핏줄기는 저 깊숙한 진흙 속까지 저 험한 바위틈까지 저 넓은 바다 속까지 왜 떠도는 것일까? 우리의 가슴 속 핏덩이는 어디까지 흘러가는가.우리의 핏줄이 여기 이곳에 눈앞에서 흘러가는데 왜 나는 붙잡지 못했을까.계곡의 물줄과 물줄이 만나 뒤섞여 소용돌이 치는 까닭은 무엇이며 우리의 핏줄과 핏줄이 마냥 그대로 흘러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모호함이 우리를 이렇게 서성이게 만드는 것일까.끝내 나는 핏줄기를 잡을 수 없었다.응어리진 핏덩이가 손이 되어 너를 잡고 하나 되고 또 하나 잡아 우리가 되고 우리가 한 덩이가 되어 돌리고 돌리고 돌리면서 소용돌이칠때 우리는 ‘원’이 되니 그 순수한 원초적인 행위자체에 어찌 승화된 응어리의 소용돌이가 없으랴······.  
귀먹은 늙은 사람, 팔팔한 젊은 사람,  아프지만 착한 사람,어둠속 숨죽이며 지켜보는 사람, 시장 골목에 쪼그린 상인들 모두의 응어리를 아우를수 있는 놀이판이 되야한다. 슬프게도 이번 ‘원 코리아 폐스티발’의 공연에선 소리없는 아우름 놀이판이 기계음 속에 묻혀버렸다.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보이지 않는 이질감으로 가로 막혀 버렸다.진정한 동그라미의 정신으로 손이 맞잡히는 감격이 절실했다.수동적인 무대 위 마무리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뒤섞여 표면적 통합은 됐지만 하나됨을 갈망하는 민족의 응어리를 씻어 낼 수 있는 ‘ 아우름의 내적 정신 통합’은 원의 모호함 속에서 서성거렸다. 한 사람의 손내밈으로 그려낼 수 없는 동그라미이다.이제 민족의 응어리진 핏덩이를 풀어버리자. 단순하고도 승화된 몸짓으로 고요하고도 고동치는 마음으로 모두 다 흙을 디디면서 모두 다 똑같은 눈높이로 모두 다 마음과 마음이 고동치며 아우러지는 원을 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