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의 울타리를 강화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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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의 울타리를 강화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수정판)
  • 홍건영
  • 승인 2003.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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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의 울타리를 강화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지금 중국에서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도하고 있는데, 동북 3성의 사회과학원과 이 지역에 소재하는 대학과 연구기관을 총동원하여 고구려에 대한 논문을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과 북한의 관련 연구성과를 동포 학자들을 통해 번역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공산당 대변지인 광명일보가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내용의 시론을 싣기도 했다.
5년간 추진되는 이 사업의 총예산이 경제 후진국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2백억 위안(약 3조원)에 달한다고 하는 사실도 놀랍지만, 광명일보 시론과 함께, 이 사업을 중국공산당의 미래를 제시하는 사회과학원 산하의 한 연구소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말하자면, 고구려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뜻이다.
또한 최근 중국 정부는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인 집안, 국내성 등지에서 대대적인 유적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고,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쓰러져가던 것을 보수하고 보존하여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정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엉뚱하게도 고구려의 천리장성을 만리장성으로 둔갑시키고 유적지의 표지석에다 중국의 지방정권이란 표기를 붙이는가 하면, 수많은 유적에 대한 한국인의 접근을 관민 합동으로 막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흔히 역사에 대한 해석은 열려있다고 하지만, 남북한 학자들과의 학술 토론이나 엄밀한 고증 절차도 없이 이처럼 통째로 고구려 역사를 가져가는 것은 역사 해석이 아닌 아예 역사 ‘탈취’이다. 이러한 탈취의 중국측 입장은 주로 현재의 중국영토 안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단순한 논리에 근거해 있다. 중국은 왜 이런 무리수를 동원하면서 어거지를 쓰는가?
한반도의 통일 후 영토 분쟁에 대비하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한국 주도로 통일된다고 했을 때, 실개천 같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강력한 한반도 통일국가와 연변자치주가 마주하는 상황에서 연변동포들의 한반도로의 휩쓸림을 미리 방지하자는 것이다. 고구려가 원래 중국 역사의 일부라면, 옛 고구려 땅에 살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본디 중화민족의 일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동포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3관교육(조국관, 민족관, 역사관)도 동북공정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 내 일각의 민족주의 움직임이 중국의 경계를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이 실제로 그런 이유를 댄다면, 이는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거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해왔던 것은 중국이 아니고 누구였던가? 게다가 역사적인 미결과제인 간도영유권 문제를 한국정부는 제기할 꿈도 꾸지 않고 있는 터에, 한국 내 고질적인 식민사관과 사대주의를 극복하려는 민간의 노력을 과대 경계하는 것은 자신의 팽창주의적 본색을 감추고 변명하려 드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강대국의 이런 오만과 기만으로는 선린과 우호를 위한 동아시아공동체의 구현이란 아득하기만 한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한심한 것은 우리 정부와 국회이다. 중국은 중국동포의 마음과 그 땅의 역사를 차례차례 탄탄한 ‘중화’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가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살길을 찾아 거금을 들여, 목숨을 걸고 조상의 땅에 찾아온 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를 고수하려고 기를 쓰고, 국회에서는 국민의 77.4%에 달하는 평등한 재외동포법 개정 요구를 무지와 무관심으로 묵살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표현되는 민족과 역사의 침탈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의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의 포용적인 동포정책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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