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회,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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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회,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된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09.07.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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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양창영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사무총장

이민전문법인 설립해 70년대 해외이민 주도

▲ 양창영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사무총장.
양창영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세총) 사무총장은 7월 중순 일본의 후지산을 다녀왔다. 일본지역 상공인총회에 참석차 갔다가 지인들과 함께 후지산 정상을 걸어서 올랐던 것이다.

이 행사에는 김덕룡 세총 이사장겸 민화협 상임의장과 김정남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도 함께 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조직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 실행에 옮겼습니다. 척식(拓植)대학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이지요”

척식은 ‘개척하고 이식한다’는 뜻으로, 이민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늘날 일본계 이민자들이 남미지역에서 ‘터줏대감’ 행세를 하면서 지도층을 구성하게 된 것은 이 같은 척식의 결과라는 게 양 총장의 변이다. 양창영 사무총장은 이민에 있어서는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다.

일찍이 범흥공사라는 이민 전문의 법인을 설립해 우리 나라 사람들을 해외로 내보낸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1965년 미국 지역을 3개월간 돌면서 토론하고 연구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을 들렀습니다. 그때 치바 사부로(千葉三郞)라는 일본 MRA(moral re-armament, 도덕재무장) 운동계 거물을 만난 것이 인생의 행로를 정하는 계기가 된 거지요”

그를 만나면서 이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마침 그 해는 미국에서 이민법이 개정돼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였다.

“그때부터 이민을 내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한 해에 5만명을 내보낸 적도 있지요”

당시 남미로 간 이민자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고 한다.

“해외이주공사라고 정부에서 직영하는 이민기관이 있었으나, 스파이를 내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외국 정부가 불신했어요”

이 바람에 이민업무를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우리 외교부가 이민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민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했어요”

남미의 어떤 공관장은 현지 정부의 소인이 찍힌 이민허가서가 가짜라고 우기면서 이주를 방해하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아그레망(신임장)이 거절 당했다고 한다.

“남미는 그때만해도 이민환경이 좋았어요. 농업이민을 반겼지요. 그래서 한때는 헬기를 대절해서 아마존 밀림지대를 샅샅이 훑기도 했어요. 농장지역 후보지를 물색한 거지요”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몰이해는 바뀔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마존 밀림지대를 돌고 오자 중앙정보부에서 부르더군요. 무슨 돈으로 그랬냐, 어떤 일을 했냐 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에 뺏긴 사진자료를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밀림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의 진기한 사진들이 들어있었다는 것. 한국 정부가 1977년 5·4조치로 중남미 이민을 일시 중단시킨 우를 범한 것도 이 같은 몰이해 때문이라는 게 양 총장의 지적이다.

“남미에 200만명의 이민자를 보내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양 총장은 “남태평양에도 이민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우리 정부의 몰이해 때문에 놓쳤다”고 역설한다.

“몇 년전 남태평양에 있는 나우루라는 섬나라의 국회의장이 방문한다고 신문에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사진을 보니 제가 이민을 보내자고 그곳에 다닐 때 신발도 없이 맨발로 저를 안내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때 남태평양의 섬들로 한국인 일부만 이민을 떠났어도 지금 그 지역의 세력 판도가 달라져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90년대부터는 세총을 맡아 한상을 네트워크로 묶는 일에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바이칼호에서 한상대회를 열기도 했고, 2005년도에는 연변지역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연변에서 대회를 개최했어요. 이듬해는 고려인을 돕기 위해 우스베키스탄에서 열었지요”

이들 지역에서 한상대회를 개최해 실질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뤄지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멕시코의 칸쿤에서 대회를 개최합니다. 중남미 지역에 있는 우리 한상들이 많이 참석할 것입니다”

이 대회에 참석한 한상들은 11월 6일 시작되는 칸쿤 회의에 이어 9일에는 쿠바를 방문해, 산업단지도 시찰하고 투자도 검토할 것이라고 양총장은 소개한다.

“한상대회만 해도 우리 세총이 처음으로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날 재외동포재단이 나서서는 우리가 한상대회를 열겠다, 그러니 당신네들은 대회 이름을 바꾸라고 하더군요”

정부가 한상대회를 전시행정을 위한 이벤트 행사로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동남아 여러나라를 돌면서 열린 중국 화교들의 화상대회도 다 가봤습니다.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화상대회는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닙니다. 민간인 화상들이 스스로 하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 한상대회는 정부가 주도하려는 등 여전히 몰이해에 빠져 있다는 게 양 총장의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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