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되지 못하는 고려인 140주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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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되지 못하는 고려인 140주년 기념관”
  • 오재범 기자
  • 승인 2009.07.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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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 공사계약서 ‘벌칙조항’에 현지진행자 ‘발끈’ 중단 위기

▲ 연해주에 지어지던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설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해주에 지어지던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설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007년도에 완공되었어야 할 기념관이 아직도 미완성 상태로 있으며, 공과금이 연체돼 짓다만 건물마저 러시아 당국에 압류될 위험에 처했다”며 “사태파악과 실태 조사를 위해 국회에 ‘진상조사소위원회’를 만들자”고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열린 2008 회계연도 결산 상임위원회에서 주장해 불거졌다.

-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은 무엇이고, 왜 짓는가?

고려인들은 세 번에 걸친 이주 역사가 있다. 1864년 연해주로 첫 이주를 시작한 이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것이 두 번째 이주이며, 1989년 구 소련의 해체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또다시 연해주로 돌아오는 것이 세 번째 이주다.

이렇게 연해주로 건너온 4만여 명의 고려인들 중 러시아 국적도, 취업권도, 사회보장도 없이 무국적자의 멍에를 안고 외국인의 지위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고려인들이 많다.

이들을 돕기 위한 실질적 움직임으로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이 구체화됐다.

처음에는 러시아 정부가 지난 2003년 12월 ‘러시아연방 고려인이주140주년위원회’를 꾸리면서 논의가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부영 전 의원이 기념관 건립 추진위를 맡아 양국이 기념관 건립 협약서를 체결해 건립은 재외동포재단이 맡고 있고, 운영지원은 동북아평화연대가 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기념관은 총 건평 1천300여 평으로 기존의 유치원 자리를 구입해 리모델링하고 추가 시설을 건축해 외래병원, 이주·독립운동관, 한글교육센터, 다목적 공연장, 고려인단체사무실, 한국문화 체험관, 도서관 등의 시설 이 들어설 예정이다.

- 지금까지 건립경과는?

정부는 2005년 8월 기존 건물을 8억원에 구입한 뒤, 그 해 12월 국회를 통해 약 24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했다. 이후 재외동포재단이 기념관 리모델링과 부속건물 건설사업을 집행했다.

이에 재단은 2006년 2월 이사회를 통해 사업진행을 확정하고, 시공사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같은 해 9월 도급순위 100위권의 ‘세창건설’로 확정했으나 부도로 인해 사업이 진행되지 못했고, 이후 입찰하는 업체가 없어 진행되지 못하다가 12월에 전남 여수에 본사를 둔 ‘거동건설’을 시공사로 확정했다.

2007년 5월부터 비로소 공사가 시작됐지만, 인플레, 환율상승과 예산부족으로 인해 전체 공정의 80%정도가 진행된 채 2008년 12월에 중단됐다.

2009년 역시 예산부족을 이유로 예상 공사비 150만 달러 중 80만 달러만 지원가능한 것이 알려지자 강경주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위원회 사무국장이 지난 4월 김 니콜라이 빼트로비치 우수리스크 민족문화자치회 회장을 만나 “도의적 차원에서 이 공사의 마무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를 김 회장이 수락해 지난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의 발단은 재단이 지원금 지급을 위해 제시한 서류 중 하나인 공사계약서 조항에 ‘공사담당자가 공기를 맞추지 못할 시 지체지연금을 지불하라’는 벌칙조항을 넣어 일어났다.

그러자 김 회장은 “나는 건설업자도 아니고, 내 돈도 20~30만 달러가 들어가는 마무리 공사를 맡은 것은 협회장으로의 도의적 책임 때문인데, 공사의 책임을 나한테 지우려고 한다”며 계약서 서명을 거부한 것이다.

이번에 들어간 벌칙조항은 처음 공사를 시작한 건설사에게 적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김 회장은 다음달 1일까지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올해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라고 현지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같은 상황에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들은 “조기완공을 위해 협의중이다”라고 답변할 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정부사업이 예산 집행되기 전에 김 회장이 사비를 들여 공사가 시작된 데는 사연이 있다. 러시아 연해주의 경우 겨울이 길고 온도가 낮기 때문에 건설공사는 매년 4~9월까지만 가능한 상황이라 올해 안에 끝내기 위해 미리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고려인들을 위한 기념관이 제때 마무리 되지 못하고 4년을 끌어온 것을 안타까워한 김 회장이 올해는 완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한다.

압류문제도 심각하다. 예산이 넘어오지 않아 지급되지 않은 공과금 연체가 길어지면 러시아의 현지 특성상 빠른 압류처리가 들어갈 수 있어 건물이 다른사람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김승력 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 사무국장은 “이번 공사를 애초부터 현지 고려인 단체에 공사를 맡기고 추후 감사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면, 이렇게 지연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현지 사정을 고려치 않고 내부 기준으로만 사업을 진행해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