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문은 민족의 영혼이며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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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문은 민족의 영혼이며 뿌리”
  • 서정순
  • 승인 2009.06.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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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순(심양 조선족학교 교사).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뭘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가 일쑤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사노릇을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물어보는 것이 뭘 가르치느냐는 것이다. 내가 조선어문을 가르친다고 하면 좀 점잖은 친구들은 "그래" 하고 말끝을 흐리는 게 탐탁한 눈치는 아니다. 성격이 덜렁거리는 친구들은 대놓고 “조선어 뭘 배울게 있다구? 말 다 하고 글 다 읽을 줄 아는데 또 뭘 배워주는데?”하고 직방배기로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배울게 많지”하며 난 웃으며 대꾸하곤 한다.

조선족학교라지만 실제로 조선족학교에서의 조선어문의 위치는 높지 못하다. 대학입시에서 조선족학교 어문은 조선어 절반 한어 절반해서 점수를 취급한다. 수학이나 외국어가 150점인데 반해서 조선어문은 그 점수의 반값인 75점밖에 안되니 실리를 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학교에서 당연히 절반밖에 대접받지 못할 것은 뻔한 이치다.

수학선생님이나 외국어선생님이 과외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 때 우리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생활의 ‘여유’를 부리며 쪼들림을 받는다. 한번은 돈 때문에 남편과 얘기하다가 저녁에 뭘 더 해야 할까보다고 했더니 남편은 웃으며 “넌 그 많은 전공 중에 하필이면 선택의 범위가 좁은 조선어문을 선택했냐”며 돈 벌 생각은 아예 집어치우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살면 중국어를 잘 배워야지 조선어를 잘 배워서는 뭘 하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들은 세대가 바뀌고 민족습관의 동화가 생기면서 차츰 더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젊었을 적 한번 씩 동창모임에 갔다 오면 전공과 직업선택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다. 학교 때 나보다 공부가 엄청 떨어져서 두번 세번 재수를 했던 친구들이 법율이나 외국어나 금융전공을 선택한 보람으로 느긋한 경제적 여유를 부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때 민족대학의 조선어전공을 선택했던 내 자신을 후회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 직종을 찾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허나 난 끝내 내 직업ㅡ조선어문선생이라는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들 삶에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족학교에서 조선어문은 단순히 어문의 범주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조선어문은 바로 민족의 영혼이며 뿌리인 셈이다. 조선어를 모르면 얼마 안가 한족문화에 동화되게 된다. 중국의 만주족이 자기 문자와 언어를 잃어버리고 300년만에 한족에게 완전히 동화된 역사 사실은 나에게 조선어문교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하였다.

조선어문이 있기에 조선족학교라는 특색이 있게 되고 조선족학교가 있기에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맥락도 이어가게 되어있다. 민족의 문화, 민족의 풍습, 민족의 전통은 바로 우리 조선어문교원들이 전파해가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선어문 수업시간을 이용하여 내가 알고 있는 고국의 역사 이야기도 끼어 얘기했고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로 엉켜있는 민족의 풍습에 대해서도 아는 데까지 알려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조직하여 각종 조선어문 웅변콩쿨, 글짓기 콩쿨에 적극 참가시켰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각종 경기에서 우승을 거두었을 때 난 한없는 영광을 느꼈다. 그것은 돈으로서는 도저히 살수 없는 크나큰 기쁨들이었다. 내게서 조선어를 배운 한족학생들이 작문이라고 우리 글로 문장을 써왔을 때 난 가르치는 자의 긍지와 보람을 느꼈다.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자면 교원 자신도 조선어문 자질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짬짬이 조선어로 글을 써 간행물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간행물에 발표하는 글들이 많아지고 학생들이 선생님이 쓴 글이 신문에 발표되었다면서 나의 글을 반에서 읽어줄 때 난 조선어문교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였다.

공자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조선어문교원이라는 선택에 대해 한 때 후회도 했고 고민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 결에 조선어문이라는 사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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