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수목장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장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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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수목장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장묘법”
  • 강성봉
  • 승인 2009.06.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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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지난 5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변우혁 고려대학교 교수가 ‘에코다잉의 세계-수목장’이라는 주제로 행한 제112차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 지난달 22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열린 ‘제112차 희망포럼’에서 변우혁 고려대 교수가 강연했다.

2004년 9월, 필자의 은사이신 김장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장례를 평소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수목장으로 거행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생의 평소 철학을 반영하듯 그분을 모신 굴참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간단한 표식만 남겨졌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행해진 김 교수의 수목장이 언론에 알려 지면서 수목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응이 크게 일어났다.

고인의 분골을 나무 밑에 묻거나 뿌리는 수목장은 현실적으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주류인 매장이나 납골이 낳고 있는 국토의 잠식이나 환경피해가 없으며 아름드리 나무를 키울 수 있기에 환경개선효과까지 있다.

더군다나 어떤 장법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치를 수 있기에 경제적인 이점도 있다.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진 수목장이 확산되어 장차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아가리라 확신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우선 수목장의 도입형태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수목장은 현재 여러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 공원묘지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독일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산림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고인의 추모목으로 교목이 쓰이는가 하면 관목이나 꽃나무가 쓰이기도 한다.

수목장의 형태에는 사람마다 기호가 다를 수 있고 각 유형마다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수목장의 형태를 잘못 적용하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산림 속에서 장미나무를 심어서 수목장을 한다면 잘 자랄 수 없거니와 관리에 힘만 들 것이다. 게다가 과도한 시설물을 산림에 조성한다면 현재의 매장이나 납골과 동일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설 수목장의 난립과 왜곡된 변형도 우려되는 점이다. 필자는 국내에 도입될 수목장의 형태로 자연 그대로의 산림에서 자라고 있는 교목을 활용하는 산림형 수목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목장이 다른 장례법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수목장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사회와 남은 후손, 그리고 자연에 폐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육신의 흔적조차도 나무를 통해 기여하는 것이다.

나무가 고인의 상징물이 되기 때문에 유족들은 싱싱하고 푸른 나무를 늘 고인처럼 대한다. 나무를 고인이라 생각하여 항상 소중하게 돌보고 잘 성장하도록 관심을 가진다.

수목장은 숲과 나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산림에 대한 투자를 확대시키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킨다.
수목장으로 증가된 푸른 녹지는 인간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은 숲에서 마음을 정화하는 기회를 얻는다. 나무와 숲이 푸르고 건강하게 잘 자라면 도시는 물론 국가 전체의 자연이 회생할 것이다.

수목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생태계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며 자연을 생성시키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수목장 조성시 고려해야할 주요 요소는 숲의 아름다움과 접근성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우람한 장령림으로 하층식생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이면 수목장을 하기에 적합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숲이 그렇게 좋은 숲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복지차원에서 정부 공공기관에서 수목장림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방안은 기존의 묘지를 수목장을 위한 꽃나무 동산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나라 묘지는 90%가 산에 있다.

봉분을 없애고 수목장을 하기에 적합한 나무를 심고 음지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꽃나무를 심으면 수목장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수목장은 자연으로 회귀하는 법칙과 비움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장례법이다. 무엇을 남기려는 인위적인 시도가 매장문화와 납골문화에 있다면, 수목장은 비우는 삶을 실천한다. 수목장은 아무 것도 가지려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긴다.

수목장은 사람과 숲이 함께 기록하는 새로운 연대기이다. 모든 생명체의 주검이 흙속에서 분해되어 다른 생명체의 자양분이 되듯이 수목장의 분골 역시 나무의 뿌리 부분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

가식과 욕심이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목장이야말로 진정 비우는 삶의 모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목장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장묘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장묘를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다루고 있다. 수목장림 조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장묘를 복지정책에 반영하는데 적합한 형태이다.

국가나 공공단체가 숲을 가꾸고 국민들이 그 숲을 자신이 마지막으로 깃들 곳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과 자연에 모두 축복이 되는 일이다.

정리=강성봉 기자
ksb0605@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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