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뤽아우프회 『파독광부 45년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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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뤽아우프회 『파독광부 45년사』 발간
  • 이석호 기자
  • 승인 2009.04.2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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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시작된 파독광부의 삶 순차적 기록… 8천 명단도 수록

“수직으로 된 승강기를 타고 860미터를 30초에 내려가니 귀가 멍하고 머리가 핑 돈다. 다시 전차를 타고 6킬로미터 이상 가서 걸어서 약 2킬로미터를 간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몸에는 비지땀이 흐르고 졸음이 오며 곧 규폐(珪幣)에 걸려서 죽을 것만 같다”

『파독광부 45년사』에 담긴 절절한 사연 중 일부다. 독일 현지 광부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Gluckauf)는 지난주 14일 지난 60~70년대 파독광부들의 이러한 아픈 사연들을 담은 한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서울 서초동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서 100여명의 광부들이 모인 가운데 이를 기념하는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책에는 ‘광부역사의 시작’, ‘한국근로자 서독진출’, ‘파독광부 제2의 도약’ 등의 내용으로 파독광부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정리했다. 강대균·강대성·강대호 등 1960~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 약 8천명의 이름도 빼놓지 않았다. 글뤽아우프의 창립과 정을 소개했고, 한독 교류에 이바지했던 인물들도 담았다.

특히 재독동포들의 당시 힘들었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광부들은 40도를 오르내리는 지하 1천미터~1천500미터 막장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일했다. 독일인의 체형에 맞게 제작된 무거운 공구를 들기 위해 힘을 다했다.

행사를 주최한 ‘글뤽아우프’라는 이름도 “지하 갱도에서 무사히 일을 마치고 위에서 보자”라는 뜻의 독일 광부들의 인사말이다.

그러나 3년 계약으로 일했던 이들은 고국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독일 각지로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아픔을 또 한번 느끼게 된다.

“1년간의 체류연장을 신청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1년이 40여년이 넘게 될지는…” 45년사는 이같이 설명한다.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수입은 197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일 탄광에서 일을 하고 연금과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천만달러. 한때 한국 GNP의 2%에 이르렀다. 서독 정부는 이들이 제공할 3년치 노동력과 그에 따라 확보하게 될 노임을 담보로 1억 5천만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정부에 제공했다.

이러한 노고는 당시 광부들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알아주는 이는 없는 것일까. 19일 열린 발간 기념행사는 파독광부들만의 조촐한 행사로 진행됐다. 고국을 방문한 2차 방문단 104명만이 자리를 채웠을 뿐이다. 성규환 글뤽아우프 회장은 “수차례 노동부에 요청했지만, 정부 관계자는 1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광부들은 매우 외로운 처지에 있다. 대부분 은퇴한 이들은 기본 생활에 못 미치는 낮은 연금을 수령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30대 무렵 일을 늦게 시작한 이들이 현재 받고 있는 연금은 독일인에 비해 현저히 적은 100만원 수준이어서 은퇴 후 생활고를 겪고 있다.

『파독광부 45년사』은 발행인 성규환 회장과 편집인 유상근씨 등 파독 광부 출신 6명이 발로 뛰며 만들어낸 산고의 결과물이다.

성 회장은 책을 발간하면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현실이 슬퍼 우리 스스로라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 70대 노인들이 나섰다”고 말했다. 또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한 파독광부들의 족적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야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