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은 배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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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배우는 게 좋다
  • 한상대
  • 승인 2009.04.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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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대(본지 편집위원, 명지대 교수)
재외동포들은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가. 우리말이고 한국인 피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는 동기부여가 불충분하다. 물론 민족 동질감을 느끼려면 말이 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동포라도 중국이나 러시아동포에 비해 일본동포가 우리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일본사회에서 우리말을 하면서 살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한민족회의나 체전 같은 곳에서 세계 동포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재일동포만 일본어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재일동포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훨씬 덜하다.

같은 혈통이니까 우리말을 해야 한다는 이유 말고도 이중언어 능력자에게는 눈에 안 보이는 실질적 이득이 많다. 그 하나가 취업이다.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면 취업이 수월하다.

취직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고의 영역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능력만큼 커진다’ 는 이론처럼 한국어와 영어로 말 할 능력이 있으면 사고의 범위가 그만큼 확대됨을 의미한다.

특정 언어로 다다를 수 있는 인지영역(認知領域)이 따로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많이 쓰는 눈치, 정(情) 같은 말은 영어에 동의어가 없다. 더구나 동양과 서양의 언어를 같이 습득하면 양쪽 문화를 다 수용하는 지름길이 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말을 하는 2세들은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누군가(Who am I)?’ 라는 문제를 놓고 정신치료를 받은 30명의 사춘기 중 6명이 자살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혀 안 배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게 미국 신호범 상원의원의 말이다. 한국어를 습득한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란 생각을 갖고 있으며 정체성에 대한 회의도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말을 가르치면 영어를 배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질문하는 부모들도 많다. 답은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이다.

두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은 두 개의 언어 판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필요 시에는 다른 판으로 대체만 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언제부터 배워야 하나? 5~11세 ‘지식 흡수의 황금기’ 때가 좋다. 어른들이 감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적응력을 이 나이의 어린이는 갖고 있다. 인간은 만 11세부터 조음점(Point of articulation)이 굳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완전한 발음구사가 가능하다.

교민사회에서 한국어교육을 저해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학습동기가 약하다. 보통 아이들은 부모의사에 따라 한글학교에 온다. 부모의 열성이 아이들의 출석률을 좌우한다. 부모의 열성이 어린이의 학습효과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정규학습,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부수학습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주말에 어린이에게 다른 과외활동이 생기면 한글학교부터 포기한다.

학습과정에 부모참여가 부족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부모들은 교육은 한글학교에만 일임하고 조급한 성과만 바란다. 모든 한글학교가 주말에만 여는 것도 문제다.

학습은 주 1회 120분보다 주 6회 20분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 다음은 배운 것을 활용할 기회가 적은 환경이다. 영어로만 하는 생활환경은 한국어와 연결된 부분이 적어 어린이들이 배우는 데 회의를 느낀다.

현지 생활과 동떨어진 교과서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에서 보내온 교재에 나오는 남산, 창경원, 동대문시장 등은 학습자가 살고 있는 현지와는 무관하다.

교사의 전문가 부족이라는 문제도 있다. 교재나 교수방법에 대한 연구능력은 없고 열성만 있어서는 성과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한글을 민족유산으로 받았다는 자부심을 갖는 일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