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신라는 로마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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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신라는 로마로 통했다
  • 강성봉
  • 승인 2009.03.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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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지난 6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가 ‘실크로드와 문명’이란 주제로 한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 정수일 교수
돌궐 건국의 명장 톤유쿡의 비문에는 그가 남긴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지어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열림만을 체험한 유목민들의 소박한 주장 같지만, 그 어떤 역사의 명언도 미치지 못한 만고의 진언이요 진리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언가를 이루어 놓는다는 뜻이다.

유목민들이 주로 개척한 실크로드는 전 지구를 아우르는 문명교류의 통로이다. 지구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3대 간선과 남북을 세로로 뚫는 5대 지선을 비롯하여 수많은 길들이 줄줄이 이어져 실크로드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문명교류 통로를 이루고 있다. 실크로드의 3대간선은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이다.

오아시스로의 동쪽끝은 남도이다. 중국 한대의 지명으로 하면 돈황 이서의 양관으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선선을 지나 곤륜산맥의 북쪽 기슭을 따라 타림분지의 남쪽 가에서 유기를 거쳐 피산에 이른 후 한 길은 계속 서행해 사차를 지난 후 파미르고원을 넘고 다른 한길은 서남행으로 오차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당대와 명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선이 크게 변하지 않고 줄곧 이용돼 왔다. 오아시스로의 이 구간은 예부터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요로였다.

실크로드 3대 간선중에서 가장 오래된 초원로는 유러시아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동서문명교류의 통로이다. 이길은 발해 남안에서 시작하여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 아랄해 연안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여 카자흐스탄과 알타이산맥 이남의 중가리아 분지에서 몽골 고비사막과 북단 오르혼강 연안에 접어든 다음 동남행으로 중국 화북지방에 이른다.

▲ 정수일 교수가 이끄는 문명교류 탐사팀이 실크로드를 찾았다. 정 교수는 매년 4차례 중앙아시아 등 문명교류 루트를 탐방한다. 제공=한국문명교류연구소


실크로드 해로는 지중해에서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지나 인도양과 태평양 및 대서양에 이르는 광활한 해상에서 문명교류가 이루어진 바닷길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동양특산물인 중국의 비단이나 도자기, 동남아와 인도의 향료가 이길을 따라 서방으로 다량 운반되었다. 동쪽끝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길을 ‘도자기의 길’, ‘향료의 길’이라 칭하는 이유이다. 중국의 정화는 7차의 원정을 통해 실크로드 해로를 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반도는 실크로드 3대간선로인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 모두에 연결되어 있었다. 문헌상으로 고조선시대부터 오아시스 육로로 연결되어 3국시대에는 신라 금성으로부터 로마까지 이어졌다는 증거가 보인다. 초원로는 기록과 유물에 근거해 전 노정을 추적 할 때, 흑해 동북편 남러시아에서 시발해 중국 화북지방과 대흥안령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른다.

이 길은 실크로드 3대 간선 중에서 가장 일찍이 개통되어 뚜렷한 교류유산을 남겨놓은 유구하고 역동적인 길로서 유목기마민족의 활동무대다.

우리의 청동기 문화도 따지고 보면 초원 실크로드를 통해 이곳까지 전해진 것이다. 유목기마민족들은 찬란한 황금문화를 창조했다. 알마아타 역사박물관의 ‘황금인간’이나 신라의 금관은 이 황금문화의 백미다. 알타이산맥 서쪽 기슭의 이시크 고분(기원전 5~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인간’은 무려 4천여장의 황금조각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다. 주인공은 스키타이 일족인 사카족 귀인이다.

신라는 황금문화의 동단에서 그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세계 현존 금관 10기 중 7개나 만들어낸 ‘금관의 나라’로 자리매김했었다.

실크로드 해로는 고조선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남북 2대로가 있었다. 이 중 북방해로는 서해안에서 요동반도, 발해를 거쳐 북중국이나 산동반도를 거쳐 초원길이나 오아시스로로 이어지는 연해로와 서해안에서 황해를 횡단하여 산동반도로 연결되는 횡단로가 있다. 남방해로는 서해안에서 황해를 횡단하여 남중국 동남해안을 거쳐 인도 아라비아까지 연결되는 남방해로가 있다.

세계4대여행기의 하나인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스님은 남방해로를 통하여 인도와 페르샤까지 방문하였다가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귀국하여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관해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실크로드를 더듬어가면 우리는 우리 겨레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낼 수 있다.
초원의 지천에 깔려 있는 오보나 솟대, 굿놀이에서 보다시피 우리를 포함한 북방 시베리아인들의 정신적 뿌리는 샤머니즘이다.

한국 전통복식의 원형이 북방 유목민들의 전개형(前開型, 카프탄)복식이라는 사실은 유목민들의 전통복식 전시회나 현행 복식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실크로드에는 스님 혜초, 원측, 장군 고선지와 같이 동서 문명교류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도 많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에서 조상들의 유적을 찾아 우리 민족의 준문화유산으로 삼는다면 이는 문화전쟁의 시대인 21세기 우리의 문화적 영토를 확장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