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팥빙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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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팥빙수’의 기쁨
  • 김태선
  • 승인 2009.03.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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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선(호주 코리아타운 편집인)
<코리아 타운>이 있는 이스트우드에서 스트라스필드나 캠시로 갈 때, 저는 가끔 엉뚱한길을 택하곤 합니다.
평소에는 실버워터 로드를 거쳐 M4를 타지만, 어떨 때는 데니스톤-웨스트 라이드-라이드-웨스트 콩코드 등을 지나는 길을 이용합니다. 골목길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탓에 더러는 일부러 다른 길을 찾아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랬습니다. 평소 올림픽대로를 이용하던 회사 출근길을 느닷없이 강변대로로 바꿔본다든지 복잡한 4대문 안 길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주에서의 일주일은 특히나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리곤 하는 일주일이 가끔씩은 너무너무 똑같이 다가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저를 제외한 <코리아 타운> 가족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만 근무합니다. 물론, 평소처럼 아침 일찍은 아니지만 저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갑니다. 이런 정리와 저런 준비들을 위해서입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그리고 금요일과 토요일, 또 일요일 실버워터 한인성당에서의 시간까지, 저에게는 일주일이 거의 변함 없는 ‘다람쥐 쳇바퀴’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문득 ‘일탈’을 갖고 싶었습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회사 일을 마치고 밖에서 저녁을 먹게 되면 이스트우드나 에핑 지역에서 해결하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스트라스필드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가끔 즐겨 찾는 한국 식당에서 매운돼지갈비 5인분, 오모가리 김치찌개에 공기밥 1개 추가, 비빔냉면 그리고 소주 두 병!

커다란 창밖으로 다가오는 바깥 풍경을 벗삼아 오랜만의 ‘일탈’을 즐겼습니다. 자리만 조금 옮겼는데도 예기치 못한 새로움과 즐거움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저녁을 먹고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한 카페로 갔습니다. “스몰은 쫌 작을 거 같고… 우리 팥빙수 미디움 하나 주세요!” 딸아이의 주문에 의해 우리 앞에 놓여진 팥빙수 그릇, 아니 항아리를 보고 저는 박장대소했습니다.

정말이지 웬만한 항아리 크기의 대형 컵(?)에 담겨 나온 ‘팥빙수 미디움’은 대단했습니다. “저걸 어떻게 다 먹나?” 싶었지만 우리는 그 많은 팥빙수를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다 먹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제가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주변에서 쉴새 없이 들려오는 ‘소음 수준을 넘어서는’ 새소리도 즐겁게만 느껴졌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큰 즐거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토요일에는 갑자기 집안을 뒤집어 놨습니다. 노래방과 오락실로 쓰던 공간에 러닝머신을 옮겨놓고 식탁의 위치도 바꿔봤습니다. 새롭게 확보된 공간에는 대형 조립식 옷장을 앉혀놨습니다.

네 식구가 몇 시간씩 낑낑대며 이것저것들을 옮겨놨더니 조금은 다른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왜 사서 고생이람?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본 이틀 간의 일탈,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은 우리에게 작은 변화, 더 나아가 생활의 활력소를 가져다 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