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노벨상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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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포럼] 노벨상유감
  • 강성봉
  • 승인 2009.03.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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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희망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글은 지난달 20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개최된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강연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매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쯤이면 한국사회에 노벨상 타령이 울려 퍼진다. 생떼를 쓰는 꽹과리 소리라고나 할까? 그러나 지난해에는 그 가락이 구슬픔이 밴 피리소리로 변했다. 일본에서 물리학상 수상자3명, 화학상 수상자 1명, 도합 4명의 수상자가 나온 반면 한국에선 한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이들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일본과 우리의 학문풍토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2차대전 종전후 일본 동경대학 총장으로 영입된 야나이하라 다다오선생은 1940년경 전쟁이 한창 진행중임에도 시국을 개탄하는 학생들에게 ‘촌음을 아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했다. 그는 한때 군부에 의해 동경대 경제학부 교수직에서 해직됐으나 1945년 8년만에 복직되고, 1951년 총장에 선출되어 6년간 재직하면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야나이하라 다다오선생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그가 우리나라의 개천절에 해당하는 일본의 기원절 기념식에서 ‘일본의 살 길은 전면강화조약을 맺는데 있지 단독강화조약체결에 있지 않다’고 세계평화를 위한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단독강화조약 체결을 서두르고 있었다. 야나이하라 총장의 연설이 대서특필되자 요시다수상이 총장을 직접 문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야나이하라 총장은 바로 사표를 던졌고 그에 동조해 전국 각대학 총장 수십명이 동조사표를 제출했다. 요시다수상은 공개사과를 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세계2차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의 일본대학의 학문적 분위기를 이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 일본에서 13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온 까닭을 일본대학들이 누린 학문의 자유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일본에서 첫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가와 히데끼 박사와 두 번째로 수상한 도모나가 신이찌로 교수도 그들의 학문하는 자세로 인해 후세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유가와 히데끼 박사의 노벨상 수상통지가 교토대학에 도달한 것은 1949년 11월3일이었다. 당시 그는 콜롬비아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필자에게는 전쟁이 끝난 지 불과 4년후인 1949년이란 시점에 유가와박사가 적대국가였던 미국의 콜롬비아대학교수로 재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그것은 참혹한 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일본의 대학들이 명치유신 이래의 학문의 자유를 마음껏 향수해 필자가 주장하는 바 학문을 노니는(遊學) 것이 가능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가와 히데끼 박사와 도모나가 신이찌로 교수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가 교토대학 교수였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교토 1중학 제3고등학교 그리고 교토대학을 같은 해에 졸업했다. 그리고 똑같이 양자역학 분야를 전공했다. 그런데 두사람은 연구분야에서 상부상조하면서도 그 삶의 방식은 달랐다. 유가와 교수가 귀족적이라면 도모나가 교수는 평민적이었다.

그러면 한국의 지적 풍토는 어떤가 생각해 보자.
이웃나라 일본에서 한해에 네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는 보도에 한국의 미디어의 반응은 민망할 정도였다.

앞으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몇몇사람의 사진을 대서특필한 기사를 보면서 ‘당사자들이 얼마나 민망했을까’ 라는 생각이 앞섰다. 바로 ‘서울대학교 총장이 <서울대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기사가 뒤따랐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교육과학기술부가 200억원의 예산으로 노벨상수상자 9명을 비롯해서 세계석학 81명을 내년부터 국내대학의 초빙교수로 영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육성사업 중 하나인 세계적 석학초빙지원>사업 대상으로 30개 대학의 79개 과제가 상정됐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있을 법한 일이지만 웬일인지 마음은 개운치 않다. 지금 떠들고 있는 만큼 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미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방 전은 고사하더라고 해방이후 60년간의 이 나라의 대학상을 보면 노벨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 틀림없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이 얼마나 보장됐는지, 또 지금의 상황은 어떤지 자못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싼 인건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갓 딴 젊은이들이다. 대학교육의 반이상을 이들 시간강사들이 메꾸고 있다. 현실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사업기획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배출하기 위해선 이러한 잘못된 대학의 학문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잘못된 대학의 학문풍토를 바꾸기 위해 정부도 노력을 해야하고 대학도 노력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