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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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 박화서
  • 승인 2009.03.06 18: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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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화서(명지대 이민학과 교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글학자 한갑수님으로 향년 92세. ‘하늘이 무너진’ 가족들의 허전함이란… 시아버지와 그 아들(한상대), 손자(한오람) 3대가 필동 면옥에서 냉면을 들면서 담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신화였다. 꺼질 듯 아슬아슬했던 격동기에 우리 민족의 역사를 현대로 이어주신 분이다. 그 분은 어려서부터 한문(漢文) 학자였던 시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전수 받아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셨다.

한글은 시아버지 형님의 친구인 국어학자 정인승 선생으로부터 배우셨다. 해방이 되자 곧장 한글학자로 변신하여 서울대 교수가 되시고는 라디오 밖에 방송 매체가 없던 시절 KBS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세종대왕의 업적을 전하셨다. 그 방송인 ‘바른말 고운말’은 37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그분이 신라시대 향가 전체를 그시대 말로 암송하시면 나는 감동해서 말을 잊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라벌 거리를 거니는 것 같은 환상에 젖기도 했다. 시아버지는 서슴지 않고 다른 민족에 비교해서 우리민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셨다. 어른의 강의를 들으면 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은 한민족임을 뼈 속까지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아들은 많이 다르다. 아들은 아버지가 우상으로 모셨던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했다. 4·19 세대로서 데모를 하다 감옥에도 갔었다. 아버지에게 우리 역사는 과거이고 한국, 중국의 고전을 열심히 읽어서 숨겨진 사실을 더 밝혀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에 반해 아들에게 우리 역사는 외국과 상호 교류하며 변화하는 생명체였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버지는 한글 학자로 한글 전용을 주장하신 분이다. 아들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Foreign Language)’를 외국인에게 오랫동안 가르치고 방법론을 연구해왔다. 그는 시드니대학 한국학과 주임교수로 있었다.

아버지는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밝혀내어 우리 민족이 간직하게 해 주셨다. 아들은 외국학자들과 공동으로 비교언어연구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어와 외국언어 차이를 분석하고 한국어를 세계화 시키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한민족 중심의 국수주의적 세계관을 자랑스럽게 가지셨던 분이다. 반면 아들은 세계 속의 한국을 외국인과 함께 공유한다.

아버지의 화술은 문자 그대로 물이 흐르는 듯 ‘청산 유수’였다. 아들의 강의는 어눌스럽고 더듬기까지 한다.
아버지는 고급 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운전 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로 다니는 걸 즐겼다. 그런데 아들은 날마다 같은 옷을 입고, 차는 교통수단일뿐 다른 관심은 없다.

아버지는 타인의 기대를 민감하게 알아 차리고 그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본인의 선의만 믿고 행동한다. 그래서 오해도 자주 산다. 아버지에게 바둑은 비생산적 오락이었고 두고 싶은 욕망을 자제하는 대상이었다. 아들은 가능하면 바둑을 많이 두어서 바둑을 통한 미학을 터득하고 싶어한다.

두 부자는 개인 성향도 다르지만 시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근대와 현대, 획일성과 다양성, 종적 질서와 횡적 질서, 개인의 우수성과 공동 연구의 저력 등 시대에 따라 흐르는 가치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발전의 모습도 있다. 아버지를 보고 배우면서 성장한 아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독립적 정체성을 확립해왔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가족이 필동 면옥에서 냉면을 먹는 대신 남양주의 선산을 보러 갔다. 남편과 오람이는 큰절을 하고 산소를 다독거린후 돌아서 차로 내려갔다.

역사가 흐른다. 아버지는 가시고 아들의 아들이 대를 잇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닮은 듯하나 다르고 다른 듯하나 닮아있다. 그리고 신화를 이어간다. 가문의 변증법적 진행이라고 할까.

시아버지 49날 며느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