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女幸’ 프로젝트
상태바
서울시의 ‘女幸’ 프로젝트
  • 김영나
  • 승인 2009.02.20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영나(재뉴질랜드 칼럼니스트)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한국에 와 있는 두어달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편리함, 섬세한, 친절함이 사회 구석구석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교통 카드 하나만으로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환승시 할인 요금이 적용되는 것이 편리했다. 매번 토큰과 차표를 사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철과 지하철에 장애자용 리프트나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는 점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어느 역사 지하 통로에는 이런 문구도 적혀 있다.

“사랑하는 아기를 많이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우리역에 수유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는 순간 나는 아기가 있다면 수유실에 들어가서 젖을 물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을 위한 열린 쉼터를 마련해 무료로 의료, 법률, 세무, 혼인 상담을 해주는 역도 있었다. 그곳에 와서 서민들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는 변호사, 의사, 세무사들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2호선 지하철 역에는 자살과 사고 방지를 위해 철로와 승객 사이에 스크린 도어가 설치돼 있다. 삶에 지친 누군가가 지하철 승강장에 죽을 결심을 하고 내려왔을 때 그의 앞을 가로막는 스크린 도어 때문에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는 스크린 도어에 씌여 있는 시를 읽는다.

“… 먼 나라에 와서 부르는 그대 이름, 아! 내 조국. 그 음성은 낮으나 잡티없이 맑고 그 음성은 짧으나 꽃불처럼 뜨겁고…”

거기엔 허영자 시인의 ‘조국’이 있다. 삶에 지친 이는 자신을 말려 주는 스크린 도어의 친절함에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스크린 도어를 역마다, 그 긴 선로에 설치하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닐 터인데, 그런 노고가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나는 무한 감동을 느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기 시설이 개선된 지하철은 쾌적했다. 그리고 너무 빨라서 멀리 사는 지인들을 만나러 갈 때도 부담없이 지하철을 이용했다. 어떤 차량은 좌석이 온돌처럼 따끈해서 내 집 안방처럼 편안히 졸기도 했다. 이쯤되면 나는 서울 와서 호강하는 오클랜드 촌년이 확실하다.

황송한 일은 또 있다. 서울시에서는 ‘여성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Women friendly city project)’ 일명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웹 사이트는 물론 TV와 신문 등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데 헤드 라인이 조금은 과장된 영화 예고편 같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부러워할 프로젝트가 서울에서 시작된다”

‘여행 프로젝트’는 일 있는 서울, 넉넉한 서울, 돌보는 서울, 안전한 서울, 편리한 서울 등을 내세우고 있다.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은 과거에도 있어 왔지만 이번 ‘여행 프로젝트’는 좀더 섬세하다. 시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눈 감아주기로 하자. 유교적,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지배하던 대한민국에서 언제 여성이 이렇듯 자상한 배려를 받아 봤던가.

밤 늦은 귀가시 여성을 위한 콜택시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가 달려와 준단다. 하이힐이 빠질 우려가 있는 보도 블럭은 모두 교체 대상이다. 뉴타운도 여성 친화적(?)으로 건설된다고. 공공 장소에 갔을 때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도 이제 사라질 듯하다. 공공 시설의 여성 화장실 변기수 확충도 ‘여행 프로젝트’중 하나다.

1월 말부터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효과적으로 반영해 추진 중인 사업을 뽑고 ‘여행 프로젝트’의 체감지수를 높여 일상적 삶 속에서 여성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나의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책은 여성의 표심을 잡기 위한 꼼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도 멍청하지 않다. 이솝 우화의 까마귀와 여우 얘기는 이렇게 각색되어야 한다.

<나무 위에 큰 고깃 덩어리를 물고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자 여우는 꾀를 내었지요. “까마귀님, 까마귀님 당신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세요” 까마귀는 여우의 계략을 눈치챘지요. 까마귀는 고기를 맛있게 다 먹고 나서야 노래를 불렀어요.>

1월 29일 ‘여행 프로젝트 경진대회’가 개최됐고, 2010년까지는 여성들의 불편, 불안 요소를 없애고 여성 친화적 도시 환경을 구축한다고 한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도시가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는 곧 남성, 유아, 노약자 등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는 서울 여성만 행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단체에 예산을 지원해서 지방 여성들의 복리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강조하지만, ‘여행 프로젝트’는 지방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뉴질랜드에도 ‘여행 프로젝트’가 상륙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아시안 여성이 목표가 되는 범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한인 단체는 ‘안전한 뉴질랜드’를 만들기 위해 압력 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각 아시아 단체와 공조해서 아시아 여성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지난 해 11월, 우리는 한국계 국회의원 멜리사 리의 당선을 기뻐했다. 그 다음 우리는 그녀와 무엇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하도록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러나 구르지 않고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그래서 부영양화 현상으로 물이 썩어 들어간다면, 누군가 나서서 돌을 밀어 굴려야 한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한국인이 좀 더 뭉쳐서 그 일을 해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여자가 부러워 할 프로젝트를 오클랜드에서도 시작해보면 어떨까? 유토피아를 향해 돌을 굴리는 일은 설사 100%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아서이다.       

---------------------------------
제공=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