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민들 조국 돕게 이중국적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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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민들 조국 돕게 이중국적 허용해야”
  • 경향신문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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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은 오래전부터 이중국적을 허용해 왔는데, 우리나라는 왜 불허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교민들이 한국 국적을 끝까지 고집하다가는 현지에서 취업이 어려운 건 물론이고, 저처럼 법률가로 활동하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아마 이 문제는 해외에서 일하는 모든 한인들의 공통된 고민일 겁니다”

최근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 참석키 위해 귀국한 브라질 연방법원 최초의 한인 판사 이규순씨(32). 그녀는 이중국적을 불허하는 ‘조국’에 대해 섭섭한 마음부터 털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브라질로 국적을 바꿨다고 솔직히 밝혔다. 또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국말로 또렷하게 강조했다.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 6세때 브라질로 이주한 그녀는 이른바 ‘이민 1.5세대’. 부모의 ‘엄명’으로 집안에선 반드시 한국어를 사용했다. 귀화를 하면서도 ‘이규순’이라는 한국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브라질 현지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양친은 여전히 한국 국적을 고집하고 있다. 그녀가 귀화하기로 결심한 것은 주정부 검사 임용시험을 코앞에 둔 상파울루 법대 5학년 무렵.

“타국인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브라질도 마찬가지였어요. 학창시절 내내 한국 국적은 불편함 그 자체였지요. 그래도 학교 다닐 때는 견딜만 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선 결국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5년 5월, 그녀는 검사 임용을 위한 다섯 단계의 시험에 모두 합격, 상파울루 바로 아래쪽에 있는 파라나주(州)의 검사로 임명되었다. 브라질 사회에서 첫 한국인 검사의 탄생인 동시에 23세의 최연소 검사라는 신기록도 세웠다. 3년4개월 동안의 검사생활. 또 한번 도전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연방판사 임용시험이었다. 브라질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선발하는 시험을 각각 치르게 되어 있다.

“판사 임용시험도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 마지막 관문이 면접이었어요. 당시 면접 담당관이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아주 딱딱한 어조로 묻더군요. 그 사람이 갖고 있던 서류에 제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다 나와 있는데도 그렇게 물었어요. 잠시 눈앞이 캄캄했죠.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브라질에서 살아온 20년동안 ‘얼굴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오래도록 겪어왔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는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에 “오래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만큼 합격소식을 들은 기쁨은 몇배나 컸다고 한다.

현재 브라질의 한국계 판사는 모두 4명. 배동원, 김상덕, 강티아고라는 이름을 가진 3명의 한국계가 상파울루주(州)에서 주판사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법원의 판사로는 그녀가 유일하다.

그녀는 브라질의 한인 이민 역사가 이제 40년이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면서, “이제 서서히 브라질의 주류사회에 편입해가는 동포들에게 부디 조국을 잊지 않게 배려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를 때 정말로 진한 눈물을 흘렸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은 꼭 한국 남자와 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3년 10월 14일 18:4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