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에서 거둔 곡물이 두만강을 건너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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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에서 거둔 곡물이 두만강을 건너오는 날
  • 김승력
  • 승인 2009.01.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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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력(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 사무국장)
연해주를 둘러보러 한국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이 차창 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묻는 질문이 있다. 발해 산성에 올라가 사방으로 확트인 벌판을 볼 때도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탄성. ‘이 좋은 들판을 왜 그냥 놀리는 겁니까!’

연해주는 한국의 1.6배 이상의 크기에 200여만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국의 1/23도 안 되는 사람들이 거의 한반도만한 땅에 정착해 살고 있는 셈이고 그 중 4만여명은 우리 고려인 동포들이다.

남도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두만강을 건너 시호테알린 산맥이란 이름으로 길게 뻗어, 시베리아 평원으로 내달리며 서쪽으로 펼쳐놓은 연해주 대평원의 농목지만도 남한의 4배가 넘는다. 소련이 와해되면서 주로 집단농장이었던 농업기반까지 함께 무너져 많은 땅이 빈들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정수리 위에 개척해야 할 대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작년 초 이명박 대통령이 미래식량기지 확보를 위한 해외농업개척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 연해주를 찾는 사람 중에 농업관련자들이 부쩍 늘었다. 겨우 타당성 조사 차원에서 들어와서는 지키지 못할 약속, 희망사항들부터 잔뜩 늘어놓고 가는 사람들이 허다한 가운데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들어와 현지에 농업법인을 만들어 대규모 농장을 확보하고 벌써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한 기업이 새로 두 군데 생겼다. ‘이지바이오’와 ‘인탑스’가 그들이다.

오래전부터 연해주 농업 개척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 곳들은 ‘동북아평화연대’나 ‘아그로상생’같은 단체들도 있으나 주로 가치와 신념으로 일하는 비영리 시민단체거나 종교단체였다. 비슷한 시기에 두만강 바로 위 핫산이란 곳에 둥지를 틀고 있던 ‘남양알로에’의 경우는 식용작물이 아니라 ‘황금’이라는 약용작물 재배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점에서 순수 민간 기업이 이윤을 내야 사는 경제논리로 연해주에 진출해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미래 식량기지 개척에 나섰다는 것은 여러모로 연해주 농업개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여러 주변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해외농업의 특수성에 비추어 큰 규모는 아니지만 미래식량기지 확보를 위해 2009년도에 250억의 농업기금이 책정됐다는 소식도 모국에서 들려오고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농업공사에서 파견된 농업담당관이 작년부터 상주하게 된 것도 든든한 지원군이 아닐 수 없다. 연해주에 진출한 한국 농업인들은 이런 조건과 상황들을 잘 엮어 큰 뜻으로 마음을 모아야 한다.

성격과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연해주에 살아남은 농업 단체와 새롭게 진출한 단체들이 허물없이 만나 민족농업의 식량기지를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낮은 수준의 모임이라도 우선은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차차 종자나 비료, 농기계 구입 등 창구를 단일화하며 협의회나 협회를 구성하여 규모를 더 키운다면 농자재 구입단가 협상이나 영농계획수립, 주정부와의 관계 등에 있어 많은 이점들이 생길 것이다.

그 전에도 새마을운동중앙회니 고합이니 경농연이니 크고 작은 단체가 연해주 농업 개척을 시도했지만, 낮선 환경에서 정부의 지원이나 조방농업의 경험도 거의 없이 적은 자본을 갖고 들어와 각개전투로 대규모 영농을 꿈꾸다 패퇴해 나갔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여건이 좋아 지고, 경험이 쌓이고 있으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연해주 황금벌판에서 수확한 곡물을 가득 실은 기차들이, 지역의 경제를 해결하고 지척의 두만강을 지나 식량난에 굶주린 북녘까지 향하며, 판문점을 통과해 한국까지 다다르는 신명나는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