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만난 동포들 4. 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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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만난 동포들 4. 정갑수
  • 최연구
  • 승인 200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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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정갑수(49) 위원장의 별명은 ‘꿈을 좇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20여년전 돌연 동북아평화를 주장한 그를 두고 ‘대동아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19년간을 고집스럽게 계속해 온 원코리아 페스티벌은 오사카의 명물행사로 자리잡았고 동북아평화는 보편적인 구호가 되고 있다. 오사카에서 19년째 하나를 외치고 있는 이 행사덕분에 오사카에서는 누구나 ‘하나’라는 용어를 안다고 한다. 그가 주장했던 원코리아와 하나는 7.4남북공동성명에 기반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민단도, 총련도 그를 돈키호테처럼 취급했다. 이런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정씨는 “일본에는 3.8선도 없는데 자유롭게 만나고 화합해야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그는 유명인사의 반열에 올라있다. 일본의 3대 일간지인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찌 신문도 원코리아 페스티벌을 매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 그는 95년 마흔을 넘긴 늦깍이로 열 살 연하의 김희정(39)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페스티벌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왔다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그의 동지이자 반려자가 되었다 그와 같이 일을 하면서 “누가 부인이 될지 몰라도 고생 꽤나 하겠다”고 생각했다는데 그게 자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85년 1회대회부터 원코리아는 남북과 재외동포들의 파이프역할을 자처했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시민과 연대하는 아시아 시민 창출을 위한 동북아공동체를 지향해왔다. 원코리아 페스티벌의 피날레는 실행위원장인 정갑수씨의 선창에 따라 모두가 검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하나’를 외치는 것이다. 그는 건배를 할 때도 ‘하나’라고 외친다. 정갑수씨는“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 조국은 하나이다. 그 때문에 그많은 불편함과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고집스럽게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정갑수위원장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제 일본동포사회는 민족화합과 평화라는 조그만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오사카=최연구 www.choiy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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