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통역 두고 수업, “IT도, 한국어도 다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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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통역 두고 수업, “IT도, 한국어도 다 배우고 싶어요”
  • 이석호 기자
  • 승인 2009.01.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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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 연해주-사할린 재외동포 청년 직업훈련 연수

▲ ‘재외동포청년 직업훈련연수’가 처음으로 연해주 사할린 동포들을 대상으로 인천 송내 폴리텍∏대학에서 실시되고 있다.

지난 19일 인천 송내 폴리텍∏ 대학교 4층 IT 강의실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수업이 진행됐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의 후손들이 IT 선진국 한국에서 산업연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특히 신 발렌티나(24) 씨에게는 더욱 수업이 남다르다. 1935년 그의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우즈벡으로 강제 이주된 후, 척박한 땅을 일구고 목숨을 연명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도 부모님과 함께 13살 때 우즈벡에서 연해주로 이주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연해주는 낯설은 지역임에 틀림없지만, 우즈벡의 가혹한 경제난과 소수민족들에 대한 배타심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신 발렌티나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의 무용담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할머니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낯선 우즈베키스탄 늪지대에 말 그대로 버려졌다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입버릇처럼 얘기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20여명 씩 나눠 군락을 짓고 살다가 돌림병이 한번 돌면 떼죽음을 당한 기억을 더듬곤 하셨다”고 덧붙였다.

재외동포재단이 기획하고 한국산업관리인력공단이 진행하는 ‘연해주-사할린 재외동포 청년 직업훈련연수’는 처음으로 연해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사업을 기획한 재외동포재단은 지난 12일 “연해주는 최근 중앙아시아 고려인 후손들이 재이주하는 지역으로, 열악한 환경의 동포 후손들에게 기회의 폭을 넓히자는 사업취지와 일치해서 연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에서는 뭔가 어색한 풍경이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일러스트, 포토숍을 한국어로 설명하면, 그 옆에 통역사가 러시아어로 하나하나 통역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2년 과정을 6개 월안에 마칠 정도로 수업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번 교육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동포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재외동포재단 장정환 팀장은 “이 프로그램은 산업인력관리공단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교육을 이수한 멕시코 동포 후손들이 POSCO 등 국내 대기업에 취업을 연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연해주 학생들을 보다 많이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수업 중에 만난 연해주 학생들은 “동북아평화연대를 비롯, 많은 민간단체들이 연해주 사업을 헌신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신 발렌티나 씨 역시 “선교사들에게 아리랑 무용단에서 8년 동안 우리 춤을 배우고, 러시아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다른 학생들처럼 “한국에서 이번 산업연수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교육을 받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