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로 승격한 한글날을 크게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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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로 승격한 한글날을 크게 기뻐한다
  • 김영자
  • 승인 2008.10.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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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자(독일 레겐스부르크대 명예교수, 본지 칼럼니스트)
훈민정음이 반포된 해는 1446년(해례본의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다.

그러니까 한글은 올해로 562살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린다.

한글은 그동안 수많은 수난을 겪었다. 창제 당시에는 유교선비들의 가혹한 반대를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한글 죽이기 운동’에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귀한 뜻을 가진 몇 분들 덕택으로, 이제 한글은 세계 문맹퇴치운동 공헌자에게 수여하는 세계적인 수상으로까지 승격을 했다.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라고 극찬한다. 어느 언어학자는 한글의 우수성을 크게 인정하면서 세계공통어로 채택했으면 싶다고도 했다.

창제자와 창제 연도며 창제 이유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글은 대한민국 한글 외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국내에서도 간혹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정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국력이 강해지면서 지구인들이 한글을 배우러 몰려들거라는 ‘에헴’ 자부심 섞인 장담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몇 사람의 자부심은 우리 국민 전체의 관심사에서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듯 하다. 오죽했으면 국경일이자 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을 자국민의 의식속에서 사라지게 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훈민정음 창제 반포일인 10월 9일이 다시 국경일로 명예를 되찾은 것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께 뒤늦은 축하를 드린다.

필자가 국내에서만 살았다면 대다수 국내인처럼 한글의 우수성에 무관심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기회가 닿아 해외에 거주한 인연으로, 그도 유럽 젊은이들에게 한국어 훈장을 20여년 하다 보니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겨울날 굴리는 눈덩어리처럼 나날이 불어간다.

강의 첫 시간에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여러분이 강의실을 떠날 때는 한글을 읽을 수 있다”

눈이 둥그래진 학생들은 못 믿겠다는 듯 살그머니 웃음까지 띈다. 그러나 90분 강의를 마치고 자기 이름을 써서 들고 나가는 그들은 한글에 대한 경탄과 함께 배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이때가 필자에게는 최고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렇지만 한글 읽기를 배우게 한 후 한국어 수업으로 들어가면 경어법과 어미활용법에 절절 매면서 포기하는 학생도 적지 않게 생긴다.

‘의기양양’ 필자의 기초한국어 교과서를 사들고 한국으로 떠난 독일 외교관, 파견직장인의 책상 위에서 장식으로 꽂혀있는 예가 허다하다.

수업시간의 고충을 들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한글의 우수함을 계속 자랑하려고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 도서박람회가 매년 10월이면 열린다. 이때 세계적으로 우수 문학작품을 선정해서 성인 문학상, 아동문학상 등 50 여개 시상식이 정치문화계의 내노라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열린다.

그리고 해마다 한 나라를 주재국으로 선정해서 그 해에는 주빈국에게 자국의 문화홍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와 많은 혜택을 부여한다. 2005년은 기다리던 ‘한국의 해’영광을 얻었다. 한국정부(문광부)는 조직위원회를 조직하고 2년간 본격적인 준비를 마치고 성실하게 한국문학과 문화를 ‘세계로의 문자문화’관문인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내놓았다.

주빈관에는 ‘한국의 얼굴 문학’으로 100선을 진열했고, 옆 방에는 한글의 자모와 단어 짜임새, 직지심경 등이 전시되어 한글의 과학적인 우수성을 소개해서 많은 감탄을 얻었다.

이렇듯 성대하게 ‘한글의 우수성’이 해외에서 홍보행사를 치렀건만 국내의 거대 언론들은 이러한 한글홍보행사가 있었다는 것 조차 외면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글자에 우리가 자긍심을 가지지 않는데, 외국인들이 자청하고 한글을 배우려 할 때 우리의 준비가 어느 정도에 와 있을지 정말 의문스럽다.

요즘 젊은 세대의 한글과 관련된 인터넷 댓글을 읽다 보면 한심한 질문들이 많다. 이런 상황은 세계학력수능 결과 4위라는 급수가 무색하게 우리 교육의 맹점을 잘 보여준다. 세계 경제 강대국 10위에 올라섰다는 자부심만 가질 게 아니라 자국 문화, 역사, 전통사상을 잘 배우고 보존하면서 해외에 알리는 행동이 바로 문화국민으로서 탈바꿈하는 것이다.

한글 사랑, 한글은 각종 예술작품, 의상작품 등 국제 경쟁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주요 주제다. 독일 상점 전시에는 일본 글자나 한자를 인용해서 자기네 상품소개를 한다. 왜 한글의 인용이 없을까? 이유를 물어보면 ‘너희는 일본문자나 한자 중 어느 것으로 쓰느냐?’고 되묻는 때가 허다하다.

한글날이 공휴일은 아니더라도 국경일로 명예 회복됨을 기해 우리도 해외 한글홍보에 나서자고 큰 목소리로 제안한다. 한글날에 한글을 배우겠다는 어느 독일인에게도 한글자랑을 할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국경일 명예 되찾은 한글날에 뜨거운 축하를 드린다.

이상규 국어연구원장의 경축사 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글자랑을 마친다. “한글의 중흥기를 맞는 오늘날 우리는 세종대왕이 직접 창제하신 한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한글은 휴대전화 자판… 다양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음소문자이다. 한글이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며, 국가발전의 동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조직위원회의 졸속 영어몰입교육 제안을 아직도 기억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다. 국가관이 확립되지 않은 정권교체로 모국의 장래에 검은 구름이 덮히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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